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종길의 영화읽기]반공 틀에 다시 갇힌 한국영화

시계아이콘02분 16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이재한 감독의 '인천상륙작전', 1960~1970년대 반공영화 공식 그대로 가져와

[이종길의 영화읽기]반공 틀에 다시 갇힌 한국영화 영화 '인천상륙작전' 스틸 컷
AD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이재한 감독(45)의 '인천상륙작전'은 전쟁영화다. 대규모 전투 시퀀스는 없다. 북한군으로 위장 잠입한 해군부대의 작전 수행을 그린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51)의 '작전명 발키리(2008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53)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년)'과 같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첩보영화다. 작전명 발키리는 클라우스 폰 슈타펜버그 대령(톰 크루즈)의 내면을 부각하지 않는다. 건조한 화면을 빠른 템포로 나열해 알프레도 히치콕의 서스펜스에 다가간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아돌프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인물들을 치밀하게 엮고, 서부극과 같이 시퀀스를 펼쳐 긴장과 재미를 전한다.

두 영화와 달리 인천상륙작전은 혹평을 받고 있다. 핵심은 영웅주의를 통해 강조되는 애국심. 이를 표방하고도 찬사를 받은 작품은 많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70)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년)',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61)의 '패트리어트: 늪 속의 여우(2000년)', 리들리 스콧 감독(79)의 '블랙 호크 다운(2001년)', HBO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년)' 등이 대표적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86)의 '아메리칸 스나이퍼(2015년)'는 지난해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각색상 등 여섯 부문 후보에 올랐다.


[이종길의 영화읽기]반공 틀에 다시 갇힌 한국영화 영화 '인천상륙작전' 스틸 컷

결국 문제는 만듦새다. 인천상륙작전은 컴퓨터그래픽 등을 사용하지만 시대를 역행하는 느낌이 강하다. 1960년대~1970년대에 소모된 반공영화의 틀을 그대로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전우애를 통해 남성적 연대를 나타내면서 희생과 헌신으로 집단성을 체현한다. 김기덕 감독(82)의 '5인의 해병(1961년)',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년)', 고영남 감독의 '결사 대작전(1969년)'와 같이 해군부대를 각기 다른 지역ㆍ문화의 인물들로 구성했다. 부대원들은 전쟁을 겪으면서 서로의 차이를 좁힌다. 죽음 앞에서는 극적으로 화해한다. 오대수(고윤)는 총탄에 쓰러지면서 노비 천달중(길금성)에게 말한다. "다시 태어나면 형으로 모시겠어."


반공영화는 이런 신으로 남성다움의 척도를 제시한다. 협력과 의무를 저버리는 자는 비참하게 죽인다. 반면 제 역할을 해낸 자에게는 장엄한 음악과 함께 희생과 헌신의 가치를 부여한다. 영웅주의로 표현해 이 장르의 주제의식으로 각인한다. 인천상륙작전은 이러한 공식에 충실하다. 부대원들이 죽음을 맞는 신에 슬로 모션(화면에서의 움직임이 실제보다 느리게 보이도록 하는 기법)을 걸고 태극기 등을 배치한다. 최무룡 감독의 '피어린 구월산(1965년)', 돌아오지 않는 해병 등에서도 모든 인물들은 장렬하게 전사한다. 신상옥 감독이 연출한 '빨간 마후라(1964년)'의 마지막 신에서는 살아남은 자들이 묘비 앞에서 죽은 이를 애도한다.


[이종길의 영화읽기]반공 틀에 다시 갇힌 한국영화 반공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 스틸 컷


아군과 적군의 대립은 당연히 극명하게 드러난다. 북한군은 예외 없이 타자(他者)이자 악인이다. 강범구 감독의 '동굴 속의 애욕(1964년)'은 빨치산을 비인간적으로 묘사했다. 이만희 감독의 '싸리골의 신화(1967년)'와 이강천 감독의 '어떤 눈망울(1968년)'에서는 북한군이 민간인을 쉴 새 없이 억압하고 핍박한다. 인천상륙작전도 다르지 않다. 북한 방어사령관 림계진(이범수)은 인민재판을 열고 민간인을 위협한다. 해군부대와의 전투에서는 젊은 여인을 총알받이로 이용한다. 사실 극악무도함은 장학수 대위(이정재) 또한 만만치 않다. '이념은 피보다 진하다'는 신념을 버리고 연합군에 합류한 인물이지만, 북한군 거의 한 부대를 무자비하게 죽인다. 하지만 적군을 악인으로 묘사해 악인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이데올로기 등이 개입돼 영웅으로 떠받들어진다.


[이종길의 영화읽기]반공 틀에 다시 갇힌 한국영화 반공영화 '결사 대작전' 스틸 컷


이런 영화에는 쉬어가는 장면이 있다. 일상적인 부대생활을 보여주면서 담소, 흡연, 편지 등을 활용한다. 인천상륙작전에서는 남기성(박철민)이 코미디릴리프(긴장된 화면에 우스운 장면을 삽입하여 과도한 긴장감을 늦추는 수법)를 책임진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재치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한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구봉서와 비슷한 인물이다. 인천상륙작전에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리암 니슨)도 등장한다. 이 감독은 그를 통해 전형적인 아버지상을 제시한다. 또 "이 전투는 내게 마지막이 되지 않을 것이다"와 같은 대사로 남성적인 카리스마와 직업군인으로서의 프로페셔널리즘을 보여준다. 빨간 마후라의 전투기 편대장과 정진우 감독의 '8240 KLO'에 등장하는 이상팔 대장(박암) 등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해군부대와 교차되는 지점이 거의 없어 애초 의도가 제대로 실리진 못했다.


인천상륙작전은 옛 장르적 구조에 철저히 기대다보니 반공주의 성격이 짙게 나타난다. 1960년대~1970년대에 제작된 반공영화들은 반공이라는 억압적 정체성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 기제였다. 한편으로는 여기에 동화되지 않고 이반을 꿈꾸는 저항의 실마리가 배태되는 공적 공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1966년 대종상 수상 부문에 우수 반공영화상까지 신설됐지만,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끝으로 인기를 잃어갔다. 계몽적 성격의 영화를 제도적으로 육성하고자 한 국가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해 낳은 역효과였다. 영화인들이 전쟁을 오락적 재현으로 볼 수 없기에 드러낸 한계이기도 했다.


[이종길의 영화읽기]반공 틀에 다시 갇힌 한국영화 영화 '인천상륙작전' 스틸 컷


반공 이데올로기는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사회에서 서서히 해체됐다. 당연히 반공영화도 장르로서의 수명을 다했다. 그러나 천안함 침몰 사건 등 국가 안보문제는 여전히 이슈가 되고 있다. 전쟁 가능성이 엄존하는 분단 체제이기에 반공영화라는 외피를 다시 쓸 여지는 충분하다. 그렇다고 40여 년 전 국가에서 지정한 프레임 안에서 사고를 제한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제약에 막힌다면 반공영화는 그저 낡은 시대의 유물이자 파산한 프레임으로 남을 것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