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김근철 특파원]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백악관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한 대장정에 한걸음 다가섰다.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26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웰스파고 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의 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미국의 주요 정당에서 여성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것은 사상 최초다. 더구나 클린턴 후보가 11월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꺾을 경우 그는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된다. 미국에선 지난 228년간 44대를 거치면서도 단 한 명의 여성 대통령은 물론 부통령조차도 배출되지 않았다. 이 밖에 힐러리는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사상 최초의 부부 대통령이라는 신화도 함께 이루게 된다.
당 지도부는 이날 오후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대의원 공개 호명 투표인 '롤 콜(Roll Call)' 개시를 선언했다. 당초 예상됐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지지 대의원의 소란은 없었고 대회장은 점차 최초 여성 대통령을 후보로 선출을 앞두고 달아올랐다.
상당수 대의원들은 호명 투표에 앞서 "민주당이 8년 전 흑인 대통령 후보를 선출한 데 이어 여성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역사를 다시 만들고 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각 주의 알파벳 순서로 진행된 호명 투표에서 버몬트주 차례에서 클린턴 후보는 대의원 과반수인 2382명을 넘기며 후보로 확정됐다.
대통령 선출의 대미는 샌더스 의원이 장식했다. 샌더스가 소속된 버몬트주는 발표 순서를 제일 마지막으로 미뤘고 샌더스 의원이 마지막 발표자로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대의원 득표와 관련 없이 "힐러리 클린턴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는 데 동의한다"고 선언하며 대선 후보 경선과 선출 절차의 종지부를 스스로 찍었다. 8년전 전당대회에서도 클린턴은 뉴욕주 대의원 자격으로 당시 버락 오바마 후보를 대선 후보로 직접 추대했다.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 출신에, 상원의원, 국무장관 등을 걸친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이 민주당 대선 후보에 오르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8년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초반 대세론에 취해있던 클린턴 후보는 당시 신성처럼 등장한 버락 오바마에게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박빙의 승부를 펼쳤지만 클린턴 후보는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을 결국 깨지 못했다"는 말을 남기고 깨끗이 승복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에 승리한 뒤 국무장관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고 클린턴 후보는 이를 받아들였다.
오바마 1기 정부 4년 동안 클린턴 후보는 온갖 국제외교 현안을 능숙하게 처리하며 오바마 정부의 기틀을 다지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국무장관 시절은 이메일 스캔들과 미국 외교관 4명이 숨진 리비아 벵가지 영사관 테러사건 책임론 등 어두운 그림자도 남겼다.
지난해 그는 대세론의 바람을 타고 민주당 대선 경선에 다시 도전했다. 그러나 이번엔 샌더스 의원의 거센 도전으로 역전위기까지 몰리기도 했다.
1947년 10월26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근교에서 3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클린턴 후보는 어려서부터 정치와 여성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며 자신의 꿈을 키워왔다. 처음엔 공화당원이었지만 민주당원으로 변신했다. 클린턴 후보는 1969년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했고 여기서 아칸소주 출신의 남편 빌도 만났다. 두 사람은 1975년 10월 결혼한 뒤 아칸소에서 살림을 차렸고 이후 빌은 주 법무장관과 주지사에 당선되며 출세가도를 달렸다. 당시 힐러리는 변호사로 맹활약, 수차례 미국 100대 변호사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남편 빌은 1993년부터 2001년까지 8년간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했고 힐러리도 퍼스트 레이디로서 백악관을 지켰다. 힐러리는 당시 조용한 내조에 머물지 않고 국가보건개혁 태스크포스 책임자를 맡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백악관에 머무는 동안 클린턴 부부는 남편 빌의 르윈스키 스캔들과 화이트워터 게이트 스캔들 등으로 최악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힐러리는 백악관에서 나온 이후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정치인 힐러리'의 길을 개척해나갔다. 클린턴 후보는 2001년 뉴욕 상원의원에 도전,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됐다. 뉴욕 상원의원으로 활동한 8년 동안 클린턴 후보는 각종 현안을 주도하며 민주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확고한 위치를 굳혀나갔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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