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경제5단체 합동캠페인, 왜?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8년차 직장인인 이지현(33ㆍ여)씨는 최근 연차휴가 신청서를 냈다가 상사로부터 "휴가가서 뭐하려고? 승진할 때 되지 않았냐?"는 면박만 받았다. 이씨는 "야근도 잦고 퇴근 후에도 업무에 시달리는 게 한국 직장인 아니냐"며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라도 눈치안보고 제대로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정부가 경제5단체와 함께 휴가사유 없애기, 근무시간 외 연락 자제 등 4가지 캠페인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우리사회 전반에 박힌 전일제ㆍ장시간 근로관행을 개선하고 일ㆍ가정 양립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다.
정시퇴근, 육아ㆍ출산휴직, 유연근무제 등 제도는 이미 마련돼있지만 정작 근로자들은 눈치만 보며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통계청 등에서 집계하는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은 실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누리지 못하는 휴식시간, 눈치보여 못쓰는 연차휴가 등 숨겨진 노동시간이 길다"고 꼬집었다. 익스피디아가 전 세계 24개국 직장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 직장인이 사용하는 연차휴가는 8.6일로 조사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프랑스 30.7일, 독일 27.7일, 스페인 27.4일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특히 퇴근 후 업무지시는 전 세계적으로도 뜨거운 감자다. 프랑스의 경우 근로자들이 근무시간 외 직장 상사로부터 온 업무 관련 전화나 메시지, 이메일 등을 받지 않을 권리, 이른바 '연락받지 않을 권리'를 노동법 개정안에 포함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을 발의하며 직장인들 사이에서 "정신적 피해가 심하다"는 옹호론이 일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직장인들이 업무 시간 외 업무 목적으로 스마트 기기를 이용하는 시간은 하루 약 1.6시간(휴일 기준)이며, 3시간 초과 근무자도 15.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기관 차원에서 공동 응답문자 등을 개발해 '근무시간 외 업무연락 안받고 안보내기 운동'을 확산시킨다는 방침이다.
LG유플러스의 경우 지난 3월부터 오후 10시 이후 업무관련 카톡 금지, 휴일 업무지시 금지 등 조항을 마련하고, 이를 위반한 상급자에 대해서는 보직해임한다는 지침을 전 부서를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다. 팀장급인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업무시간 내 다 끝내야하니 업무집중도가 높아지고, 직원들 입장에서는 퇴근 후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등 긍정적인 점이 많다"고 말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정부가 이번 캠페인에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참여하게끔 하는 내용을 포함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한상의가 국내 100개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문화를 진단한 결과, 상습적 야근ㆍ비효율적 회의 등 기업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핵심열쇠는 'CEO의 인식과 의지'로 파악됐다.
특히 이번 캠페인은 여성의 경력단절 예방과 저출산 대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정부는 일ㆍ가정이 양립하지 못하는 한국의 직장문화가 국가 전체의 일ㆍ가정 불균형, 저출산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2014년 OECD 주요 국가의 일-생활 균형지수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10점 만점에 4.2점으로 멕시코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다.
고영선 고용부 차관은 "저출산은 우리 경제와 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심각한 위협요인"이라며 "정부, 기업, 개인이 다함께 해결해야하는 국가적 과제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일가정 양립문화를 조성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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