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지난 1일 경북 고령의 제지공장에서 폐지처리 탱크 안에 들어가 청소를 하던 근로자 1명이 유독가스에 질식해 쓰러졌다. 동료를 구조하기 위해 아무런 장비 없이 들어간 다른 근로자 두 명 역시 유독가스에 질식했다. 이 사고로 2명이 숨지고 1명은 중태에 빠졌다.
이처럼 산업현장 내 밀폐공간에서 질식재해를 입은 근로자는 최근 5년간 180명에 달한다. 그리고 이 중 절반이 넘는 92명이 목숨을 잃었다. 연 평균 20명에 가까운 질식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문제는 매년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고만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질식사고는 맨홀 내부나 아파트 물탱크, 오폐수 처리조, 정화조 등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할 때 발생한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발생장소별 사망자는 저장용기(21.7%), 건설현장(16.3%), 오폐수처리ㆍ정화조(14.1%) 및 맨홀, 선박, 반응기(7.6%) 등에서 주로 발생했다. 7곳의 사망자 점유율은 무려 74.9%에 달한다.
업종별로 가장 많은 질식사고 사망자가 발생한 업종은 건설업으로, 5년간 사망자 92명 중 39명(42.4%)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어 제조업(33.7%), 기타의 사업(13%), 농업(4.3%), 운수업(4.3%) 순이다.
공단 관계자는 "저장용기, 건설현장, 오폐수처리장, 맨홀, 선박, 반응기에서 발생하는 재해는 장소의 내부 확인, 점검, 청소, 내부 설비 교체 및 재해자 구조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주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 이에 대한 특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질식재해는 산소부족 상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보니 사망률도 높은 편이다. 공기 중의 산소농도는 일반적으로 21%정도며 산소결핍은 공기 중 산소농도가 18% 미만인 상태를 말한다. 산소결핍 장소에서는 정신이 혼미해지거나, 의식을 상실하게 된다. 심할 경우에는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고 5분 이내에 사망하게 된다. 특히 여름철은 기온이 상승하고 집중호우나 장마 등으로 정화조나 음식물쓰레기처리 탱크 등 밀폐된 공간에서 미생물 증식이 활발해져 산소결핍 상태가 되기 쉽다.
산소농도가 정상범위(18~23.5%)라 하더라도 혈액 중 산소운반을 저해하는 가스가 있는 경우에도 질식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산업설비의 경우에는 화재나 폭발을 방지하기 위해 외부 공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질소와 같은 불활성가스를 채워두는데, 이러한 장소에서도 질식재해의 위험이 존재한다. 질소나, 헬륨, 프레온, 아르곤 등 불활성가스 등이 환기가 불충분한 제한된 공간에 다량으로 존재할 경우 체내에 필요한 산소공급 부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밖에 일산화탄소나 황화수소와 같은 화학적질식제는 혈액 중의 혈색소와 결합하여 산소운반 능력을 방해하고, 뇌로 보내는 산소를 감소시켜 질식사고를 일으킨다.
이처럼 환기가 충분히 되지 않아 적정공기가 유지되지 않은 상태의 밀폐공간에 작업자가 들어가면 질식재해가 발생한다.
공단 관계자는 "정상적인 공기에서 21% 수준의 산소 농도가 18% 미만으로 떨어지면 어지럼증 등이 발생하고, 6% 이하로 떨어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의식을 잃게 된다"며 "밀폐 공간 질식재해의 사망률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산소농도가 16% 이하로 낮아진 공기를 마시게 되면 인체의 각 조직에 산소가 부족하게 되어 맥박과 호흡이 빨라지고 구토, 두통 등의 증상이 나타나게 되며, 10% 이하가 되면 의식상실, 경련, 맥박수가 감소하게 돼 질식으로 사망하게 된다.
또 호흡이 정지된 시간이 6분 이상이 되면 소생 가망이 없게 되며, 소생한계 내에서 구조된 경우라도 후유증으로 인한 언어장해, 운동장해, 시야협착, 환각, 건망증의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그동안 발생한 질식재해사고 대부분은 작업 지시 과정부터 산소농도측정, 감시인 배치 등 기본적인 사전작업안전수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현장에 투입되는 근로자들의 산소결핍 또는 유해가스 중독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보니, 근로자 한 명이 쓰러지면 보호장비 착용 등 적절한 대비 없이 구조하는 과정에서 구조자까지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산소결핍이나 유해가스에 의한 질식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밀폐공간 작업 전과 작업 중에 산소와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하고 환기를 실시해야 한다고 공단측은 거듭 강조했다. 또 밀폐공간 사고 발생 시 구조작업에 나설 경우, 해당 공간은 산소가 부족한 곳이므로 보호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와 공단은 밀폐공간 질식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3-3-3 질식재해 예방수칙'을 보급하고 있다.
예방수칙 첫 번째는 원청업체와 협력업체, 작업 근로자 등 3자 간 유해위험 정보 공유다. 원청업체는 작업장소의 유해위험 정보를 협력업체에 제공해야 하고, 협력업체는 근로자에게 유해위험 정보를 알려주고 교육해야 한다. 작업 근로자 역시 유해위험 정보에 따라 안전수칙을 준수하고 작업해야 한다.
예방수칙 두 번째는 사업장에서 3가지 사전 예방 절차를 지키는 것이다. 3가지 예방절차는 밀폐공간에 대한 평가, 출입금지 표시, 출입허가제다. ▲질식위험이 있는 밀폐공간인지 여부를 평가하고, ▲관계 근로자가 아닌 사람의 출입은 금지하고, ▲작업 수행 전 유해가스 차단조치 실시ㆍ산소 및 유해가스 농도측정ㆍ환기설비 가동ㆍ보호구 비치 등을 실시한 후 출입을 허가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마지막 예방수칙은 작업을 할 때 측정, 환기, 착용 등 3대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이다. 작업 전과 작업 중 산소 및 유해가스 농도측정과 환기를 실시하고, 구조작업 시에는 꼭 송기마스크 등 보호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질식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국내외 움직임은 더욱 구체화하는 추세다. 환경부는 올해부터 7개 지방환경청의 공공하수처리시설의 운영실태 평가항목에 '밀폐공간 보건작업 프로그램 수립ㆍ시행실태 평가항목을 신설'해 질식재해 예방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또 최근 3년간 공공하수도에서 12명의 질식사망자가 발생함에 따라 지방환경청의 '공공하수처리시설 운영실태 평가'에 밀폐공간 질식예방 관련 평가항목을 추가로 신설했다.
미국은 지난 4월 건설현장 밀폐공간 구조에 관한 표준을 발표했다. 미국 안전보건청(OSHA, Occupati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이 발간한 보고서에는 밀폐공간 출입에 대한 허가가 필요하고, 위험ㆍ유해 등을 감지해 평가 및 관리하지 않으면 근로자의 건강과 생명에 위험을 초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밀폐공간의 표준을 제시하고 사업주, 구조활동 서비스제공자, 근로자의 권리에 대한 내용을 각각 명시했다. 공단 관계자는 "사업주 및 근로자들이 질식재해에 대한 위험성 인식과 작업장 내 질식사고 우려 작업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50인 미만 소기업에 장비구입비 50% 지원
안전보건공단은 질식재해를 막기 위해 각 기업에 질식재해예방장비를 무상으로 대여해주거나 구입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대여 장비는 산소농도 및 유해가스농도 측정기, 공기호흡기, 송기마스크, 이동식 환기팬 등 밀폐공간 작업시 필요한 장비다. 무상 대여 신청은 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로 하면 된다.
또 50인 미만 소기업에 대해서는 질식재해 예방장비 구입 시 사업장 당 2000만원 한도 내에서 구입비용의 50%를 지원하고 있다.
질식사고 발생 가능성이 큰 사업장을 대상으로 기술지도와 교육도 실시한다. 공단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제 619조)에 따라 밀폐공간 작업장의 사업주가 작업 전 밀폐공간보건작업 프로그램을 수립해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밀폐공간보건작업 프로그램' 작성 예시 등 각종 교육자료, 지침, 기술자료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밀폐공간 작업자를 대상으로 해당 지역의 안전보건공단 지역본부와 지사를 통해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질식재해예방 스티커, 안전표지, 안전수칙자료 등도 제공한다.
세종=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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