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사람 - 1968년 동시 탄생한 '세계서 가장 빠른 남자' 3명과 의문점들
[아시아경제 김철현 기자]"인간의 능력에 대한 기성관념의 붕괴라는 점에서 무한한 인류의 전진을 의미한다." 1968년 6월, 국내 한 일간지는 이 사건을 이렇게 보도했다. 그해 전미 육상선수권대회에서 인간의 한계로 여겨진 '마의 10초 벽'이 무너진 것이다. 그것도 동시에 3명이 100m를 9초대에 뛰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기록이 무한한 인류의 전진으로 대접받은 것은 아니다. 새로운 역사를 맞이한 것은 환호가 아닌 일단 의심이었다.
20일은 48년 전 100m 달리기에서 10초 벽이 깨진 날이다. 짐 하인즈와 찰리 그린, 로니 레이 스미스는 전미 육상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수동시계가 9초9를 가리키는 순간 결승선을 통과했다. 하인즈과 그린이 동시에 들어왔고 이어 2위로 골인한 스미스의 기록도 9초9로 인정됐다.
이날 하인즈와 그린은 허용한계보다 적은 1.8마일의 바람을 등지고 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대회를 운영하는 측은 이 기록을 곧바로 인정하지 않았다. 인간이 9초대에 100m를 주파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던 것이다. 트랙의 길이에 대한 재조사가 이뤄졌고 오히려 10cm가 길다는 결과가 나온 뒤에야 기록이 인정됐다.
그도 그럴 것이 1912년 미국의 도널드 리핀코트가 10초6에 100m를 주파한 것을 시작으로 세계기록 공인이 시작된 뒤 10초의 벽은 50년 넘게 깨지지 않고 있었다. 독일의 아르민 하리가 1960년 올림픽에서 10초00을 기록했지만 그의 기록도 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리는 재경기를 하고 다시 10초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다음에 기록을 인정받았다. 그 만큼 9초대에 100m를 주파하는 것은 어렵다고 여겨졌다.
'마의 10초 벽'을 처음으로 무너뜨린 하인즈는 4개월 뒤 멕시코올림픽에서 9초95를 기록했다. 이후 9초9의 벽은 20년 넘게 깨지지 않았다. 그러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캐나다의 벤 존슨이 9초79를 기록하면서 9초9와 9초8의 벽이 동시에 무너지는 듯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기록에 대한 의심이 적중했다. 벤 존슨의 약물복용으로 기록이 취소된 것이다.
9초9의 기록은 3년이 지난 뒤 칼 루이스가 9초86으로 비로소 깼다. 9초8은 모리스 그린이 1999년 9초79로 골인하면서 무너졌다. 모리스 그린이 기록을 세우기 전 1996년 오바델레 톰슨은 9초69를 기록했지만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도가 규정을 초과해 공인을 받지 못했다. 9초7의 벽은 현재 세계최고기록을 가지고 있는 우사인 볼트가 무너뜨렸다. 그는 2008년 9초69를 기록했고 이어 2009년 세계 육상선수권대회에서에는 9초58로 세계기록을 세웠다.
1912년 리핀코트가 10초6을 기록한 뒤 100년 동안 인류가 줄인 100m 기록은 1초 남짓인 셈이다. 리빈코트 이후 하인즈가 10초 벽을 무너뜨리기까지 56년이 걸렸고 다시 41년이 걸려 0.37초를 줄였다. 세계의 스프린터들은 지난 100년 동안 100분의 1초, 10분의 1초를 줄이며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온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한계 극복이 아니라 과학의 힘이라는 의심은 여전히 존재한다. 56년 전 인류 최초로 10초에 100m를 주파했던 아르민 하리는 "볼트가 50년 전 뛰었다면 9초대 진입이 어려웠다"고 했다. 탄성이 전혀 없는 석탄 재질의 트랙 위를 뛰었다면 현재 볼트의 세계 신기록은 어려웠다는 얘기다. 10초의 벽이 무너진 1968년부터 합성고무 재질의 트랙이 등장했고 100m 기록은 단축되기 시작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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