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 디자인 혁신한 클래런스 손더스, 대포를 설계한 발리에르와 그리보발 등
'맨발의 엔지니어들', 뒤에 가려진 엔지니어들의 천재성 조명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지난달 교육부는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을 선정했다. 학령인구 감소에 주로 대응한 과거 방식과 달리해 사회 수요를 반영했다. 지정된 전국 대학 스물한 곳이 내년부터 인문사회 신입생 정원을 2500명 줄이고, 공학 정원을 4500명 늘린다. 대학 구조를 바꿔 '인력 미스매치'를 막겠다는 의지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14~2024년 4년제 대학 사회계열에서는 21만7000명의 인력 초과공급이, 공학계열에서는 21만5000명의 초과 수요가 예상된다.
공학은 인간에게 유용한 학문이지만 과학에 비해서도 경시되는 분위기가 있다. 거의 모든 문헌에서 '과학과 공학' 대신 '과학과 기술'이라는 문구를 사용한다. 조명을 받은 엔지니어도 과학자에 비해 적다. 알렉산더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발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마거릿 허친슨이 없었다면 수상은 불가능했다. 대량생산으로 페니실린의 효능을 널리 알렸다. 그러나 그녀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아이작 뉴턴이 우주의 물리법칙을 발견했지만, 우주로 탐사선을 쏘아올린 사람들은 공학자들이었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 구조를 규명했지만, 줄기세포 응용 기술 또한 엔지니어들의 업적이다.
이 책은 허친슨처럼 무대 뒤에 가려진 천재들을 조명한다.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며 엔지니어들의 활약상을 상세하게 전한다. 루이 15세를 위해 대포를 설계한 발리에르와 그리보발, 슈퍼마켓 디자인을 혁신한 클래런스 손더스, 디지털 카메라 산업을 개척한 스티브 새슨, 스톡홀름의 교통체증을 해소한 IBM 엔지니어들 등이다. 표준시간대, 우편번호, 바코드 등의 개발 과정을 다루면서 엔지니어들이 시스템의 효율을 어떻게 높이는지도 살펴본다.
기술은 사실을 늘어놓는데 머물지 않는다. 저자 구루 마드하반은 생의학공학자이자 미국국립과학원의 정책자문위원이다. 미국국립과학원에서 프로그램 감독으로 스마트 백신 연구개발을 주도한다. 그는 복잡한 문제에 도전하는 엔지니어들의 공통된 특징 세 가지를 꼽는다. 복잡한 문제의 구성요소를 분해해 구조를 파악하고, 제약조건에서 설계를 완성하며, 제약조건과 절충해 문제의 타당한 해결책을 얻는 것이다. 마드하반은 거의 모든 사례에서 이 점을 주목한다. 새로운 공통점도 찾는다. 시행착오적 접근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구글 엔지니어들을 예로 든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상의 방법을 놓고 긴 시간 토론하기보다 즉각 실행해보고 반복하면서 정교하게 다듬어가는 접근방식을 따른다."
공학적 사고에 대한 통찰 있는 분석은 공학 입문자에게 자양분을 제공한다. 공학과 관련이 없어도 창조적 사고를 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마드하반은 공학이 무언가를 만드는데 필요한 기술적 스킬이라는 일반적 이해를 탈피했다. 과학이나 수학이 수반되는 상황에 국한하지 않고 일상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방법론의 하나임을 강조한다. 공학은 이러한 발상에서 시작됐다.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학문이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포도 착즙기를 목판 인쇄에 활용한 공학적 발명의 결과 지식 혁명이 촉발됐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 시스템과 환경은 전문성을 기르고 영구화하려고 한다. 전공과 부전공이라는 편협한 개념에 매몰돼 우리 사회가 더 넓은 측면을 가지고 있음을 무시한다. 구분하는 선이 굵을수록 직업을 잘못 선택할 확률은 커진다. 정부의 이번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선정은 그래서 반갑다. 인문사회계열 학생이 공학계열 융복합 교육으로 취업분야를 폭넓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 선정된 대학들의 보편적 정책이다.
인간은 각자의 운명을 디자인한다는 측면에서 모두가 엔지니어다. 공학적 사고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중구난방의 움직임들을 진보의 힘으로 응집시킬 수 있고, 현재와 미래의 복잡성을 해결하는 사회적 근육을 단련시킬 수 있다. 마드하반은 말한다. "공학은 삶을 위한 지속적인 인식의 전형이자, 내구성 있고 실용적인 구조물이다."
<구루 마드하반 지음/유정식 옮김/알에이치코리아/1만6000원>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