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등급 대부분 '정상' 분류…'고정 이하' 조정땐 충당금 폭탄
법정관리 신청이 임박한 STX조선해양을 시작으로 조선·해운업계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관련 계열사나 협력업체의 줄도산 우려도 높아지고 있어 기업은행의 협력업체에 대한 여신관리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26일 기업은행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 등 5개 조선사의 중·소형 협력업체 848곳에 대해 기업은행이 보유한 대출액은 총 1조9750억원이다. 이는 원청업체에 대한 매출 비중이 30% 이상인 협력업체만 추린 것으로, 실제 여신 규모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은행은 이들 협력업체의 구체적인 여신 등급은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지난 1분기 실적자료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건설·조선·해운 관련 기업대출에 대한 건전성 분류에서 95.3%가 '정상' 등급으로 명시돼 있다. 조선업종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형조선사는 물론 협력업체의 여신 등급도 부실채권을 의미하는 고정 이하 단계로 분류등급을 조정하게 되면 엄청난 충당금 적립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은행권이 대형 조선·해운사 여신 보다 협력업체발 조선·해운 여신에 더 우려를 보이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특히 중소기업 여신 비중이 높은 기업은행은 비상이 걸렸다. 시중은행들이 수 년 전부터 중대형 조선·해운사와 함께 협력업체의 여신 규모를 줄이는 과정에서 자금난에 시달려 온 협력업체가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대형 조선·해운사에 대해 매출 비중이 높은 협력업체에 대해서는 수 년 전부터 본사 차원에서 워닝(warning) 사인을 주고 해당 지역 영업점에서 대출한도를 줄여왔다"며 "(대형 조선·해운사에 대한) 매출 비중이 높은 협력업체일 수록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 역시 "조선·해운 협력업체에 대한 신용평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집중관리 대상이었다"며 "남은 여신은 대부분 국책은행에 몰려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은행권에서 협력사 충당금 공포가 커지고 있지만 금융 당국은 느긋한 반응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협력사 대출금까지는 파악하지 않고 있다"며 "기업이 당장 망한 것이 아니라 일단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담보로 건 매출채권 자체가 부실화된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기업은행 고위 관계자도 "대기업들이 매출금을 주지 않을 정도로 협력업체가 유동성 악화를 겪는 시점은 아니다"면서도 "중소기업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국책은행까지 협력업체에 대한 대출금을 회수해버리면 옳지 않다"고 말했다. 아울러 "당국에서 하반기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위험 평가를 예고한 만큼 관련 지침에 따라 관리할 것"이라며 "만약 대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여파가 중소기업에까지 영향을 준다면 구조조정이 잘못된 것 아닌가.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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