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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똥' 작가가 피로 쓴 마지막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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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사람 - 권정생 타계 9주기에 떠올려보는,미완성작 '한티재 하늘'의 사연

'강아지똥' 작가가 피로 쓴 마지막 대하소설 권정생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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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의 담 밑의 강아지똥은 자신이 더럽고 필요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민들레 싹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꼭 필요한 쓰임을 찾아 민들레의 뿌리로 스며든다. 그렇게 강아지똥이 아름다운 꽃이 된다는 얘기는 쉬 쓸모없다 여기는 강아지똥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존재라는, 천대 받아도 좋은 것은 세상에 없다는 진리를 담담하게 전한다.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권정생 선생은 이후에도 '몽실언니'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권정생이 아이들의 이야기만 쓴 것은 아니었다. 그는 글을 쓰기 시작할 무렵부터 우리 역사 속 못 배우고 굶주린 '강아지똥'들이 주인공인 대하소설을 구상하고 있었다. 작가가 10권쯤 쓰려고 했던 이 대하소설은 두 권만 세상에 나왔다.


17일은 작가 권정생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9년이 되는 날이다. 권정생은 19살에 늑막염과 폐결핵을 앓고 신장, 방광결핵까지 겹쳐 늘 병마와 싸우며 글을 썼다. 그는 동화작가로 기억되고 있지만 스스로 '뼈를 깎아서 피로 쓴 소설'이라고 한 것은 대하소설 '한티재 하늘'이었다. 권정생은 이 소설을 8~10권으로 기획했다고 한다. 그는 오랫동안 구상했던 소설의 집필을 뒤늦게 시작한 이유에 대해 "20년 전부터 썼다면 이미 완성됐겠지만 쓸데없는 치기나 젊은 혈기 때문에 지금처럼 곰삭은 글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천의 개척교회인 민들레교회의 주보에 연재를 시작한 이 소설은 경북 안동 한티재를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그곳에서 화전민으로 살며 1891년 구한말부터 일제치하인 1937년까지 역사의 격동기에 신음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두 권의 책에 담았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연은 저마다 기구하고 가슴 아프다. 하지만 지주와 일본군에게 억압 받으면서도 결코 꺾이지 않고 농민군으로, 의병으로 맞서 싸운다.


권정생은 죽는 날까지 이 소설을 집필하겠다고 했지만 작가가 계속 쓰려고 했던 해방 이후 민중의 삶은 세상에 선을 보이지 못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지금보다 더 어려운 시대를 잘도 헤쳐 온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생전 한 인터뷰에서 전한 바 있다.


'강아지똥'을 읽고 자란 이들은 이제 40대가 되고 기성세대가 됐다. 하지만 과거 강아지똥이라고 불리던 존재는 오늘날 흙수저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여전히 권정생의 응원이 필요한 시대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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