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김보경 기자]정부가 연일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까닭은 지지부진한 '노동개혁'과 무관하지 않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는 점차 심화되고 있고, 지난해 대타협 파기 이후 정부 독자적으로 강행한 노동개혁 5법은 국회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상태다. 이대로라면 어렵게 꺼내든 구조개혁 카드가 물거품이 될 수 있는 만큼, 먼저 공공ㆍ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성과연봉제를 확대해 성과 중심의 문화를 만들고 임금체계 개편, 노동시장 구조개혁까지 이끌어내겠다는 방침인 셈이다.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고착화한 배경에 연공급제(호봉제) 임금체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70% 안팎이 연공급제를 택하고 있으며, 국내 기업의 신입사원과 30년차 근로자 간 임금격차지수는 무려 3.3배로 독일(1.97배), 프랑스(1.34배), 스웨덴(1.1배) 등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파악된다. 임금체계를 개편하지 않고서는 격차 해소, 장년층 고용안정, 청년실업난 해소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특히 정부는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조직화된 정규직이 그간 연공급제의 최대 수혜를 누려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임금체계 개편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에 가장 소극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12일 성과연봉제 도입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공공ㆍ금융노조를 직접적으로 겨냥해 "무조건 반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비판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공공성이 강한 공공ㆍ금융기관은 정부로부터 제도적 보호,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상위 10%'의 일자리를 누린 만큼 국민 전체와 미래세대를 고려할 책임이 크다는 주장이다.
이 장관은 "스스로 이중구조 해소와 공정사회를 외치면서 정작 본인들의 이해가 걸려 있는 임금체계 개편에 반대한다면 국민들, 특히 일자리 고통에 시달리는 우리 아들, 딸들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정부가 일방적으로 강행 드라이브를 거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평가체계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막무가내식 도입은 금융권의 무리한 실적압박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 없이 이사회의 일방적 결정으로 밀어부치는 방식에 대해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앞서 대타협 결렬 후 노동입법, 양대지침 등이 정부의 독자적 강행이었다는 점도 사회적 신뢰 기반을 약하게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양대지침에 이어 성과연봉제까지 일방적 행정독재"라며 "총파업으로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가운데 최근 프랑스 정부가 의회 표결을 거치지 않고 노동개혁을 강행하는 '초강수'를 띄운 것도 향후 정부와 여당의 노동개혁 추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헌법 상 '대통령 긴급명령권'을 발동해 하원 표결 없이 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프랑스 정부는 현 경제위기 상황을 국가적 위기로 간주하고, 주당 35시간 근무제 유연화ㆍ해고 요건 완화 등이 담긴 노동법을 처리했다. 야당이 즉각 내각 불신임카드를 꺼내드는 등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이를 감수하고 강행한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노동개혁을 둘러싼 갈등이 사회ㆍ경제적 문제로 치닫고 있어 프랑스 사례를 주목할만 하다. 이달 19대 국회가 종료되면 노동개혁 법안은 자동 폐기 수순을 밟게 된다. 정부ㆍ여당은 기간제법을 제외한 노동개혁 4법(근로기준법ㆍ고용보험법ㆍ산재보험법ㆍ파견근로자법)을 일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야당은 파견법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우라나라는 중대한 재정ㆍ경제상의 위기 시 대통령이 긴급재정경제명령권(긴급명령권)을 발동할 수 있다. 1993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시행할 때 긴급명령권을 발동한 것이 일례다. 지난해 정의화 국회의장이 경제활성화 및 노동개혁 등 쟁점법안에 대해 직권상정 불가 입장을 나타내면서 긴급명령권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당시 청와대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선을 그었다.
이달 열릴 박근혜 대통령과 올랑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노동개혁과 관련해 어떤 논의가 오갈 지도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한ㆍ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이달 말 올랑드 대통령 초청으로 프랑스를 국빈방문해 정상회담을 갖는다.
세종=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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