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회계인 뽑겠다는 불명예 선정委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번번한 상도 없고…, 묵묵히 고생하는 후배들을 위해 써달라."
수십년간 회계업계에서 일해온 한 회계사가 후배들을 위해 개인돈 5억원을 기부했다. 이 회계사는 국내 1위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의 창립멤버이자 대표(1986~1996년)였으며 제1대 한국회계기준원장 등을 거쳐 현재 서울과학종합대학원을 이끌고 있는 김일섭 총장이다. 그는 국내 최초로 회계법인에 경영컨설팅을 도입하는 등 한국 회계사의 거목으로 통한다.
김 총장이 기부한 이 돈은 27일 공식 발족한 '회계인 명예의 전당' 위원회의 1호 기부금이 됐고, 앞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회계사들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그동안 회계사들에게 주는 상이라고는 한국상장사협의회가 주는 감사대상이 유일했으나 이젠 명예의 전당이 생겼으니 회계사들의 동기부여와 나아가 한국 회계산업 발전을 위해 고무적일 수 있다.
그런데 1명의 위원장과 6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명예의 전당 위원회 멤버 중 어울리지 않는 한 사람이 있어 이곳의 설립 취지가 퇴색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강성원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이 주인공인데 임기가 두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 어쨌든 회계사회 회장이라는 신분 덕에 임기 2년을 보장받는 당연직으로 자리를 꿰찼다.
강 회장은 지난달 25일 두산엔진 사외이사에도 임명되면서 현재 명함만 3개다. 기업의 회계를 감시하는 조직의 수장이 오히려 사기업으로부터 월급을 받으며 회계 독립성을 저해할 수 있는 역할을 자처했다는 언론의 비판과 청년회계사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같은 회계사회 소속 부회장은 사외이사 후보에서 물러났으나 강 회장은 개의치 않았다. 사외이사 겸직은 역대 회장들은 하지 않았던 처사다. "일반 회계사들에겐 엄격한 윤리규범을 요구하면서 정작 본인은 한발 벗어나 이익 챙기기에만 몰두해 있다"며 그를 수치스럽게 여기던 한 젊은 회계사의 말이 스쳐간다.
이런 강 회장이 과연 명예로운 회계인을 선정하는 작업을 잘 할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본인과 닮은 사람을 철저히 걸러내는 역할을 하면 된다는 의미에서는 누구보다 적임자다.
명심해야 할 것은 명예로운 회계사는 어느 '높으신 분'으로부터 명예를 수여받아서가 아니라 후배들을 위해 선뜻 자신의 몫을 내어줄 수 있는, 그리고 부끄러움 없이 자신의 업(業)에 충실했던 한 평범한 회계사의 발자취가 그대로 드러났을 때 탄생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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