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26일 신현우 전 대표(68) 등 옥시의 전ㆍ현직 핵심 관계자들을 줄소환하기 시작하면서 구체적인 법리적 쟁점에 관심이 모인다.
소환 조사가 마무리 되면 검찰의 사법처리 방향이 정해지고 사건은 법원으로 넘어가게 된다.
국민적 공분과는 별개로 첨예한 다툼의 요소와 입증이 필요한 사안이 얽히고 설켜 있어 공소를 유지해야 하는 검찰이나 판단을 내릴 법원 모두 만만찮은 과제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
검찰과 법원이 입증하거나 가려내야 할 쟁점은 크게 ▲경영진이 살균제의 유해성을 알고도 모른 척 했는 지 ▲문제가 불거진 뒤 경영진 차원의 조직적인 은폐 및 조작 시도가 있었는지 ▲살균제와 인체(폐) 손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명확한 지 등이다.
검찰은 2001년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파는 과정에서 유해 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 사람의 몸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다는 걸 인지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옥시는 PHMG가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를 가장 먼저 시판했다. PHMG는 또한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물질이다. 경영진이 PHMG의 유해성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의혹을 검찰이 입증하고 법원이 이를 인정하면 옥시 경영진의 책임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2011년 임산부 및 영ㆍ유아 사망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 뒤 옥시 측이 자신에게 불리한 정황이나 증거를 일부러 없애거나 조작했는지 여부 또한 중요한 쟁점이다. 정부는 당시 가습기 살균제의 인체 유해성을 인정하는 역학조사 결과를 내놓았고 옥시는 자체적으로 학술기관 등에 실험을 의뢰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옥시가 유리한 결과를 도출하려고 실험과 관련한 각종 여건 등을 조작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 같은 쟁점은 범죄의 고의성이나 의도성, 즉 형사재판에서 얼마나 엄한 처벌이 가능한지를 따지는 데 직결되는 요인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검찰이 지금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의혹들이 입증되면 그 자체로 가중처벌의 이유가 상당히 광범위하게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쟁점들 못지 않게 중요한 건 살균제를 사용하는 게 폐 손상과 직접 연결되는 지를 입증하는 작업이다. 경영진 처벌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요소라고도 볼 수 있다. 입증 책임은 검찰에 있다. 워낙 전문적인 영역이라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검찰은 경영진에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한때 살인죄 적용 가능성도 검토 했으나 '가습기 살균제로 사람을 죽이려 한' 고의성을 밝혀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 공소시효(7년) 문제가 제기됐으나 검찰은 전혀 상관 없다는 입장이다. 제품이 처음 출시된 건 2001년이지만 공소시효는 사망이나 상해, 즉 '사고'가 발생한 시점을 기준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지난 2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정인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피해 아동 임성준 군(13) 등의 옥시 및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해자들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조작 의혹 등을 반영해 재판을 진행해달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수사 결과를 살펴보고 두세달 뒤에 다음 재판을 열기로 했다. 검찰의 수사 결과 및 이에 대한 형사재판의 결과가 사건과 관련한 향후 민사재판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성준 군은 이날 코에 산소 튜브를 꽂은 모습으로 휠체어와 산소통에 의지한 채 재판을 지켜봤다. 성준 군 등을 포함한 피해자 20여명은 살균제 피해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뒤인 2012년 소송을 냈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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