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 살인운전·속옷 세차 동영상…이선 카우치·그리샤 마무린의 죄와 벌
[아시아경제 김희윤 작가] “한 번만 더 내 아들을 혼냈다간 그 학교를 사버리겠소!”
사업에 몰두하느라 가정을 다소 등한시했던 프레드는 아내 토냐와의 이혼 이후 하나뿐인 아들이 늘 신경 쓰였지만 잘 보살피지 못해왔다. 모처럼 집에 일찍 들어온 날, 풀죽은 채 집에 들어오는 아들의 모습에 프레드는 자초지종을 묻는다. “친구와 다툼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저를 혼냈어요.” 아들의 말에 격분한 프레드는 학교에 당장 전화를 걸어 아들을 혼낸 이유를 따져 물었고, 차분히 아들의 잘못을 일러주는 선생에게 당장 교장을 바꾸라고 소리쳤다. 이성을 잃은 프레드에게 아들의 잘못 여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수화기 넘어 당황한 교장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프레드는 “내 자식을 한 번만 더 혼냈다간 학교를 사버리겠다”고 내질렀다.
아들은 몇 년 뒤 아버지의 차에 친구 7명을 태우고 심야의 일탈을 즐긴다. 면허 없는 열다섯 나이는 둘째 치고 그는 이미 만취 상태였다. 광란의 질주 끝은 참혹했다. 아들이 몰던 트럭은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차를 들이받았고, 이로 인한 연쇄충돌로 4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지만, 이번에도 아버지는 아들을 감싸고돌았다. 유능한 변호사를 붙여 재판에 나선 아들은 삶이 너무 풍요로워 감정을 통제할 수 없는 이른바 ‘부자병(affluenza)’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 징역 대신 보호관찰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유족을 비롯한 피해자에게 제대로 된 사과 한번 없이 아들은 재활시설에 들어가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보호관찰 기간 중에도 아들의 일탈은 계속됐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파티를 벌이고 놀다 찍힌 사진이 우연히 트위터에 올라오면서 보호관찰을 위반한 사실이 들통나자 이번엔 엄마 토나가 아들을 데리고 멕시코로 도피했다. 보호관찰 위반내용이 법원에 적발될 시 10년 실형을 받을 것을 염려한 엄마의 배려(?)였다. 미국과 멕시코 경찰의 공조로 작년 12월 30일 멕시코에서 강제 송환된 엄마는 보석금을 내고 석방되었고, 아들은 청소년 구치소에 수감됐다. 미 경찰과 검찰은 아들에게 최대 징역 40년 형을 구형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아직 청소년인 그는 성인교도소에서 2년 징역, 남은 보호관찰 처분 10년을 채울 것을 지난 14일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 지방법원에서 선고받았다.
유전무죄, 이 같은 막장 행각의 주인공은 이선 카우치(18)로 금속공장을 경영하는 사업가 프레드 카우치와 토냐 코치의 외동아들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던 ‘금수저’ 소년이었다. 이선이 11살 때 이혼한 부부는 이후 아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며 자신들의 빈자리가 채워지길 바랐던 모양. 이런 비뚤어진 부모의 지원 아래 이선은 13살 때부터 운전을 시작했고, 15세 땐 한 살 어린 소녀와 알몸으로 있다가 붙잡혔는데 이때부터 알코올 중독 초기 증세를 보였다. 그해 6월 아버지의 차를 몰고 나가 사고를 낸 당시 이선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허용치의 3배가 넘은 상태로, 동승한 친구들과 마트에서 맥주를 훔쳐 마신 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져 미 사회를 공분케 했다.
속옷만 입고 세차해
유튜브에서 엽기 실험 영상을 올리며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그레고리 골드샤이드는 모스크바 거리에서 일반인 여성을 상대로 뮤비 촬영을 핑계로 돈을 줄 테니 속옷만 입고 세차해 달라는 황당한 제안을 건넨다. 25만 원에서 58만 원 사이의 금액을 제안한 그레고리는 속옷만 입고, 또는 속옷을 벗은 뒤 그것에 세제를 묻혀 세차하는 여성을 적나라하게 카메라에 담아 유튜브에 공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거리의 행인에게 삭발을 제안해 직접 머리를 자르는가 하면 토마토 주스를 끼얹거나 개를 총으로 쏴 죽일 것을 요구한다. 그때마다 돈을 제시하며 황당한 실험을 계속하는 그레고리의 정체는 하바롭스크의 억만장자 그레고리 네클류도프의 손자 그리샤 마무린(16)으로 밝혀졌다. 이 소년은 “돈이면 안 될 것이 없어요!”라며 이 같은 엽기행각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 사실을 접한 조부는 격노해 그를 불러들였지만, 소년은 아랑곳 않고 모스크바에 머물며 더 자극적인 영상을 촬영해 올리고 있다.
돈이면 다 할 수 있어
이선과 그리샤의 만행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배금주의에서 비롯됐다 치부하기엔 이들의 잘못으로 인한 피해가 너무 크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앓고 있는 부자병(affluenza)은 학술적으로 인정받은 정식용어는 아니지만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부유층 2세, 3세들의 탈선 행각을 설명하기 위한 신조어로서 대중에게 널리 각인되고 있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 전반의 인식, 그리고 이런 개인의 방종을 묵인하는 사회와 경제적 시스템, 그리고 무엇보다 자식을 제대로 훈육하지 못한 부모의 무관심이 초래한 그림자 같은 질병으로 부자병은 우리 사회에도 서서히 전파되고 있다.
내 아들 때린 놈이 누구야!
자식 단속이 안 돼 고초를 겪은 부모의 사례는 너무도 많지만, 자녀가 부자병적 증상을 보이고 부모가 재벌이라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마련. 국내에서 부자병 자녀의 일탈과 이에 대한 아버지의 사과는 왕왕 있어왔다. 한화 김승연 회장은 지난 2007년 둘째 아들이 클럽에서 시비 붙은 상대 에게 집단폭행을 당하고 들어오자 직접 폭행범을 찾아 사과를 받아내며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김 회장은 이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뒤 임원진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남자로서 사과를 받게 한다는 것이 일을 크게 만들고 말았다. 무척 후회스럽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저를 나무라 주십시오.
땅콩 서비스를 문제 삼아 비행기를 회항시켜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이른바 갑질횡포는 당시 오너 일가의 월권행위라는 점과 당시 세월호 사고 이후 민감해진 안전불감증 문제와 겹쳐 국내외로 비난의 대상이 됐다. 회항 이후 사건이 커지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제 여식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저를 나무라 주십시오. 제가 교육을 잘못시킨 것 같습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40대 자녀의 불찰에 67세 부친이 고개 숙여 내 탓이오 하는 모습에서 많은 대중은 사과의 진정성과 상황의 비상식성을 질타했다.
아들의 철없는 짓에 죄송하기 그지없습니다.
지난 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막강한 지지세력을 바탕으로 서울시장에 출마한 정몽준 후보는 아들의 SNS 발언으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당시 정 후보의 차남은 페이스북에 세월호 사고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놓고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는 논지의 글을 올려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논란을 딛고 당내경선에서 승리한 정 후보는 당시 후보수락연설에서 “아들의 철없는 짓에 죄송하기 그지없다”며 눈물로 읍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미 악화된 여론은 돌아올 줄 몰랐고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에게 큰 표 차로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부자병 대처법은?
부자병의 원어, 어플루엔자(Affluenza)란 제목으로 책을 펴낸 영국의 임상소아심리학자 올리버 제임스는 부자병을 이기적 자본주의가, 스스로 양산한 시장형 인간과 결합해 만들어진 질병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런 증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진실된 모습과 대면하고 행동하는 ‘진정성’과 내 삶에 활기와 흥분을 일으키는 내면의 ‘생동감’, 그리고 현실에서 상상력을 발휘, 삶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는 ‘놀이성’과 같은 본질적 가치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실 이러한 증상의 설명과 치료법은 우리에게 별 필요가 없다. 부자병이 사회적 문제가 된 까닭은 이 병을 앓고 있는 사람 중 그 누구도 스스로가 부자병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 사회가 존속되는 이상 부자병은 완치가 불가능한 난치병으로 지속적으로 전염될 것이다. 피자 회사 사장님의, 간장 회사 대표님의, 건설사 부회장님의 갑질논란이 연일 계속되는 것만 봐도 사태의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다. 현실에서 이 같은 뜨악한 사례를 목도하고 분노하더라도 함부로 덤벼서는 안 된다. 영화 속 격투 애호가가 불쑥 나와 당신에게 경고할지 모르니까.
“나한테 이러고 뒷감당 할 수 있겠어요?”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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