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윤의 관점 ÷ '다이빙벨' 이후 나온 '나쁜 나라' '업사이드다운' 들여다보니, 현실과 창작 사이 고민
[아시아경제 김희윤 작가] “영화는 열정적 광기, 의식의 장애, 프로파간다를 목적으로 하는 마취제다. 빛에 의한 영상의 가속도는 의식의 장애를 야기한다. 빠른 속도의 흐름, 영화의 기계적인 회전과 속도는 이해의 대상을 투시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대로 믿고 따라야 할 대상들을 지속적으로 방출하고 있는 것이다.”
속도의 사상가 폴 비릴리오는 영화를 마취제라 지칭했다.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한 지 어느덧 2년, 아름다운 바다는 통곡의 해역으로 뒤바뀌었고 잊히지 않는 슬픔은 우리 사회 전반에 보이지 않게 내려앉아 시시때때로 발작을 일으킨다. 영화는 그런 아픔을 잊기 위해, 때로는 역으로 들춰내기 위해 세월호를 응시하고 소환해왔다.
예술작품의 현실재현에 대한 논쟁의 한 대목을 과거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의 끔찍한 학살을 두고 만들어진 영화에 대한 논란이 일었던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확인해보자. 이탈리아 감독 질로 폰테코르보의 <카포>는 아우슈비츠의 학살을 재현한 영화로, 영화의 마지막 씬에서 자살하는 여성을 담은 카메라가 트래블링(카메라가 바퀴 위에 얹힌 상태로 이동하면서 찍은 숏)한 것을 두고 당시 영화비평가 자크 리베트는 “(감독인)폰테코르보는 일말의 주저 없이 천함에 투신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세월호 사고 당시 논란이 됐던 ‘다이빙벨(잠수부를 수면에서 바다 밑으로 이동시키는 잠수기구. 일종의 수중 엘리베이터)’을 주제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의 디제시스는 이뤄지지 않은 일말의 가능성, 어쩌면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의 재현이다. 현실이었으면 좋았을, 그러나 현실이 될 수 없었던, 그리고 그런 가정을 가능케 한 비참한 현실을 자르고 이어붙인 바람과 재현의 기록이었다.
'다이빙벨'과 부산국제영화제의 수난
세월호 참사를 실시간으로 목도했던 대중이 영화 ‘다이빙벨’의 재현에 투사된 연출자의 의도를 천함(abjection)이라 비난한다면, 그것은 동시대를 겪은 시민이 제시한 하나의 의견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다이빙벨’의 의도에 윤리적 기준이 아닌 ‘선동’과 ‘의혹’의 메시지를 감지한 사람들이 있다. 영화 ‘다이빙벨’이 지난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 초청, 상영을 진행하자 다음날 있었던 국정감사에서 영화의 상영을 두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외압논란이 논쟁의 화두가 됐다. 앞서 부산국제영화제의 이용관 위원장은 “문체부로부터 이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면 내년에 예산지원을 안 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힌 바 있고, 국감질의에서 김종덕 장관은 ‘다이빙벨’이 상영되지 않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보도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영화진흥위원회의 부산국제영화제의 국고지원 예산 절반이 삭감됐다. 심사 평가 의결에서 전체 1위를 기록했으나, 지원은 예정대로 감축되었다. 곧이어 감사원의 회계감사가 이어지자 일각에서는 ‘다이빙벨’ 상영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해촉되고, 서병수 부산시장은 조직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
정치권은 지속해서 세월호와 관련된 이슈를 기피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2주기 추모제가 치러진 광화문광장에서 지근거리에 머물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날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불필요한 정치적 공방이 야기될 가능성을 감안해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혀 빈축을 샀으나, 이 같은 여론을 의식한 듯 김종인 대표와 정세균 종로구 당선자가 함께 참석, 대표가 아닌 개인의 자격으로 찾은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참사를 예술로 표현할 수 있는가?
그 사이 세월호를 다룬 영화로 김진열 감독의 ‘나쁜나라’와 김동빈 감독의 ‘업사이드다운’이 관객을 만났다. 모두 참사 이후 유가족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바뀌지 않는 사회의 병폐와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2001년, 미국 뉴욕에서 9.11 테러가 발생한 지 5일 뒤인 9월 16일, 독일의 전위 작곡가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은 함부르크 음악축제 개막 기자회견에서 “(9.11은)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이라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그는 “테러리스트들이 단 한 번에 우리가 음악에서는 꿈꿀 수도 없는 일을 해냈다. 한 번의 연주회를 위해 십 년간 미친 듯이 연습하고 준비한 뒤 연주와 함께 순교한 것이다.”는 말로 참사를 전위적 재현예술로 치환시켰다. 이 같은 재현으로서의 예술을 가능케 하는 현상에 대한 극단적 해석을 존중하되 동의할 순 없지만, 우리 사회에서 세월호를 다루는 시선과 그 시선을 향하는 또 다른 시선의 왜곡은 현상에 대한 대중의 본질적 인식을 흩어놓는다.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 토양 위에 쌓은 일련의 예술적 실천과 미적 태도는 끊임없이 그 의도를 의심받고, 사회적 가치 속에서 파악 당한다. 광화문 분향소를 찾은 김종인 대표는 유가족 측의 세월호특별법 개정요구에 대한 질문에 “그런 논의가 나오면 이야기가 되지 않겠냐”며 다소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20대 총선 서울 은평갑에서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후보는 지난 2년간 세월호 참사 피해자 유가족의 법률 대리인으로 활동한 ‘거리의 변호사’였다. 그의 지역구에서 투표 독려운동을 펼친 귀여운 캐릭터 인형 탈의 주인공은 세월호 유가족이었음이 뒤늦게 알려져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셨다. 주저앉아 슬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느리지만 힘 있게 전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다루는 영화 역시 최근 개봉한 ‘업사이드 다운’에서 표현된 차분한 정서는 논쟁과 분노를 넘어선 이성적 진술에 가까웠다.
예술의 '실현 불가능함'
예술은 보편적 재현규범에 종속되지 않으며,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독창성을 통해 대중에게 이해되어야 한다. 그 자체로 인정받는 동시에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이렇듯 예술은 새로운 사회적 현상을 담아내고 표현하기에 충분히 정치적이다.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로 늘어선 추모행렬 속에서 우리는 예술의 본질을 확인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예술의 ‘실현 불가능함’을 아는 것이야말로 예술가가 자기기만을 벗어나는 길이라고 말했다. 시대를 응시하는 우리의 발걸음이야말로 예술의 첫걸음은 아닐까.
“‘실현 불가능한 것’의 특징은 내가 그것을 끝까지 그리고 자세하게 생각할 수 있고 또한 어휘를 통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실현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예술 형태일 것이고 그렇다면 예술이란 우리의 ‘실현 불가능한 것’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적으로 실현하게 하는 수단일 것이다.” - 장 폴 사르트르, <야릇한 전쟁수첩> 중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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