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금리인하·양적완화 확대에 찬물…브렉시트 가능성 높아져 '파운드 급락'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살아날 것이라던 기대감이 커지던 유럽 경제에 또 다시 테러 악재가 덮쳤다.
22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의 행정 수도로 불리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잇달아 폭탄테러가 발생, 최소 23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브뤼셀 테러는 단기적으로 유럽 경제에 불확실성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소 34명 사망…금융시장은 차분= 이날 오전 8시께 브뤼셀 자벤텀 국제공항 출국장에서 두 차례의 커다란 폭발음이 울리고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 시간쯤 후에는 EU 본부 건물이 인접한 지하철 역에서 세 번째 폭발이 있었다.
영국 일간 텔레그라프는 이날 세 차례 폭발로 34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200명 이상이 다쳤다고 전했다. 이슬람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는 아마크 뉴스통신을 통해 브뤼셀 테러를 자신들이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13일 프랑스 파리에서 연쇄 테러로 130명의 사망자를 냈던 IS가 4개월 만에 다시 유럽의 심장부를 테러한 것이다.
IS의 잇따른 테러로 유럽 사회의 불안감은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강력한 경기부양 조치로 살아날 것이라던 기대감이 커지던 유럽 경제에도 찬물이 뿌려진 셈이 됐다.
일단 이날 세계 금융시장은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독일과 프랑스 주식시장은 이날 테러 소식에 아랑곳없이 0.42%, 0.09% 상승마감됐다. 영국 증시도 0.13% 올랐다. 미국 뉴욕의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 지수가 하락하긴 했지만 낙폭은 0.09%에 그쳤다.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 당시에도 금융시장은 차분했다. 테러의 배후인 IS 때문에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유가가 올랐던데다 ECB가 불확실성을 차단하기 위해 부양책을 확대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실제 ECB는 지난달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동시에 양적완화 자산매입 규모를 확대하는 강력한 부양 조치를 취했는데 테러 이후 높아진 경기 불확실성이 ECB의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테러 발생 4개월' 파리는 지금= 파리 테러가 발생했던 지난해 4분기 프랑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전기 대비)은 3분기와 동일한 0.3%를 유지했다. 표면적으로 테러가 전체 경제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파리 테러가 4분기가 절반 가량 지난 시점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올해 상반기 GDP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테러로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부문은 프랑스의 소비 경기와 관광 산업이다. 프랑스 재무부는 파리 테러가 발생한 후 관광산업 위축과 소비지출 둔화로 약 20억유로 규모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추산한 바 있다. 20억유로는 2조1000억유로 규모인 프랑스 GDP의 0.1% 수준이다.
현재 프랑스 정부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소비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소비지출 증가율(전년동월대비) 추이를 살펴보면 지난해 10월에는 2.5%였으나 테러가 발생한 11월 0.5%로 뚝 떨어졌다. 소비지출 증가율은 테러 발생 전까지 2% 안팎의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테러가 발생하면서 뚝 떨어졌고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증가율도 0.6%에 그쳤다.
유럽 전체로 봤을 때에는 잇따른 테러가 오는 6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변수다.
◆브렉시트 투표에 테러 변수= 외환시장에서는 영국 파운드화가 급락했다. 블룸버그는 브뤼셀 테러로 브렉시트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 때문이라고 파운드화 급락 배경을 설명했다.
뉴욕 외환시장에서 파운드화는 달러에 대해 1.1%, 유로에 대해 0.9% 하락했다. 블룸버그가 분류한 17개 주요 통화 중 가장 가치가 많이 떨어진 통화가 바로 파운드화였다.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영국독립당의 안보 담당 대변인인 마이크 후켐은 벨기에 테러 후 성명을 발표해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해주고 느슨하게 국경을 통제하는 EU의 정책이 영국의 안보에 얼마나 큰 위험이 되는지 이번 테러를 통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지금은 그러한 식의 발언을 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라며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캐머런 총리는 "영국의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오늘은 동정과 애도를 표해야 할 날"이라고 강조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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