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이미 성공한 종목이나 선수를 후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쉬운 일이죠. 하지만 KB는 이제 도약하려는 선수를 찾아서 성장 스토리를 같이 만들려고 합니다.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은 평창올림픽을 기대하고 후원하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일찍 ‘기적’을 이뤄낼 줄은 몰랐어요.”
채윤병(38) KB금융지주 홍보부 과장은 지난해 초부터 스포츠마케팅을 전담하고 있다. 2006년에 회사에 들어와 9년여간 은행 지점과 영업본부에서 일하다 전혀 다른 일을 맡았다. 처음 맡겨진 미션은 ‘새로운 종목과 선수를 발굴하라’는 것이었다.
“동계스포츠 종목들 중에서는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이 후원에서 빠져있더라구요. 그래프를 그려가면서 선수들의 과거 기록을 면밀히 분석해 봤더니 발전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걸 알았어요. 평창올림픽까지는 몇 년 남았으니까 금메달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죠.”
지난 겨울 시즌에서 봅슬레이의 원윤종-서영우 선수는 세계 1위,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는 세계 2위를 기록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윤 선수는 고교 3학년생이던 2012년에 입문해 경력이 3년에 불과하다.
후원 선수들을 선정할 때는 성적 뿐 아니라 인성을 중시한다. 채 과장은 “선수들을 만나보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정적이었고 무엇보다 겸손했다”고 말했다. 윤성빈 선수는 제자리에서 채 과장의 어깨 높이까지 뛰어오르는 엄청난 점프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 1일 귀국 인터뷰에서 윤 선수는 “2인자는 말이 없다. 1위에 오를 때까지 묵묵히 하겠다. 결과로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채 과장이 본대로 열정과 겸손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최근 후원 협약을 맺은 이미향 골프선수의 경우 대담함을 높게 샀다고 한다. 채 과장은 “LPGA에는 박인비 선수만 후원하고 있어서 가장 성장 가능성이 높은 선수를 찾기로 했다”며 “최근 3년간의 그린 적중률, 톱10 진입률, 퍼팅 등 기록을 살피고 전문가 자문까지 거쳐본 결과, 이미향 선수가 꼽혔다”고 말했다. 채 과장이 은행 영업본부에서 근무하면서 지점 실적을 평가할 때 익혔던 분석력이 적잖은 보탬이 되기도 했다.
채 과장은 “무엇보다 굉장히 공격적이다. 과거 경기 영상을 계속 돌려봤더니 마지막 라운드에서도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대담하게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고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선정된 선수들과는 휴대폰 메시지를 통해 수시로 소통하고 생일 케익은 물론 체력 보강을 위한 홍삼 선물을 챙기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한다.
채 과장은 “선수 어머님들하고도 자주 통화하고 선수 생일이면 ‘잘 키워주셔서 후원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적은 카드와 함께 꽃을 보내기도 한다”면서 “한 가족이라는 느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후원하고 있는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면 "마치 부모가 느끼는 듯 한 기쁨이 든다"고 한다.
채 과장은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은퇴할 때까지 같이 간다는 게 KB 스포츠마케팅의 모토”라며 “물론 잘 되면 홍보 효과가 어마어마하지만 그런 생각을 먼저 하기보다는 진정성 있게 후원해서 함께 스토리를 만들어간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민 재산 불리기 캠페인을 하는 것처럼 고객들을 든든하게 받쳐주겠다는 경영 목표와 스포츠마케팅의 정신이 같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후원 선수들의 경기가 국내에서 열리면 매번 경기장을 찾아가고 해외 경기는 새벽에 깨서 챙겨 봐야 한다. 후원 선수 선정을 할 때면 '제대로 된 결정일까' 싶어 잠을 설칠 정도다. 그래도 채 과장은 "열심히 후원해서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고, '고맙다'는 카톡 메시지라도 보내오면 보람있고 힘이 난다"고 했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