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연구팀, 연구결과 발표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정규직 근로자가 이른바 '백수(실업자)'가 되면 우울증 위험이 두 배 정도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정규직 가구주 여성의 경우에는 '백조'가 되면 우울증 위험은 무려 3.1배 증가했습니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박소희 교수팀이 정부의 한국복지패널조사(2008∼2011년)에 응한 7368명을 대상으로 고용상태 변화와 우울증의 상관성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이 드러났습니다. 이번 연구결과는 '영국의학저널'(BMJ) 최근호에 소개됐습니다.
박 교수팀은 정규직 지위를 계속 유지(정규직→정규직)하고 있는 직장인의 우울증 발생 위험을 기준(1)으로 삼았습니다. 이어 고용 형태의 변화가 우울증 발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지를 조사했습니다. 정년 퇴직·해고 등 정규직에서 실업으로 바뀐 사람의 우울증 발생 위험이 1.78배로 가장 높았습니다.
다음은 비정규직→실업(1.65배), 비정규직→비정규직(1.54배), 정규직→비정규직(1.46배), 실업→비정규직(1.34배) 순서였습니다. 고용 형태가 '비정규직→정규직', '실업→정규직'으로 바뀐 사람의 우울증 위험은 정규직을 유지한 사람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박 교수팀은 논문에서 "비정규직(precarious employment)은 특정 기간 내에 회사를 떠나기로 돼 있는 상태, 즉 임시직·파트타임·간접고용 등을 가리킨다"며 "(이번 연구에서는)구직 활동 여부와 상관없이 현재 직업이 없으면 모두 실업(unemployment)으로 간주했다"고 전제했습니다.
이 연구에선 또 성(性)·거주 지역·교육 수준·결혼 여부·경제적 능력·가구주 여부·자신이 평가하는 건강 상태 등이 고용 형태 변환 뒤의 우울증 위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고용 형태가 바뀐 뒤의 우울증 발생 위험은 여성이 남성의 1.83배였습니다. 이는 여성이 심리적으로 더 예민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대도시에 살수록(서울 시민이 농촌 지역 거주자의 1.29배), 학력이 낮을수록(초등 학력자가 대졸자의 1.25배), 홀로 살수록(기혼 대비 사별 1.71배, 이혼 1.31배, 독신 1.28배), 소득이 낮을수록(소득 수준을 4단계로 나눴을 때 최하위가 최상위 계층의 2.24배) 고용 형태 변환 뒤 우울증을 더 많이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박 교수팀은 "비(非)가구주 여성의 우울증 위험은 고용 형태의 변화에 특별한 영향을 받지 않았다"며 "이는 여성의 경력 단절이 잦은 우리나라의 특수 상황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풀이했습니다. 고학력·고숙련 여성이라도 결혼·자녀 양육 등을 이유로 스스로 퇴사하거나 비정규직으로 옮겨가는 국내 여성 고용의 현실이 반영된 결과란 분석입니다.
남성은 가구주(가계의 주 수입원) 여부와 상관없이 고용 형태 변화가 우울증 위험을 높였습니다. 정규직 가구주 남성이 '백수'가 된 뒤의 우울증 위험은 2.56배(정규직 유지 남성 대비)였습니다. 여성 가구주는 고용 형태 변화에 따른 심리·정신적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여성 가구주의 고용 형태가 정규직에서 '백조'로 바뀌었을 때의 우울증 위험은 3.1배로 남녀를 통틀어 최고치였습니다.
박 교수팀은 "비정규직·실업이 우울증과 연관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고용 관련 정책을 세울 때 성(性)·가구주 여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마음의 감기'로 통하는 우울증의 남녀 비는 1 대 2 정도입니다. 우울증은 절대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 되는 병입니다. 중증 우울증은 자살이란 비극을 부르기도 합니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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