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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국회'이어 '식물 획정위'…선거구획정 시한 못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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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실험 사실상 실패

김정훈 "획정위 왜 만들었나"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선거구획정위원회가 25일 선거구획정안 제출 시한을 지키지 못하면서 사실상 '식물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까지는 국회가 획정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핑계'가 통했지만, 이번에는 여야가 획정 기준을 제시했음에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모습을 드러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획정위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에 설치해 독립성을 강화하겠다는 당초 취지는 무색해지고 '정치권의 아바타'임이 재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평가는 수도권 일부 지역의 동(洞) 재획정을 놓고 위원회 내부에서 진통을 겪는 이유가 여야의 당리당략에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재획정에 따라 여야의 당락이 갈리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곳인 만큼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획정위가 이들 지역의 구획을 결정할 수 없어 여야 원내지도부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보다 앞서 여야는 획정위에 선거구획정기준을 전달할 당시 인구편차 상한과 하한 2대1이 반영된 시도별 의석수까지 지정해 제시하기도 했다. 선관위 산하의 획정위가 '정치권의 대리전을 치른다'는 비아냥을 듣는 이유다.


획정위의 획정안 제출이 지연되자 정치권에서도 질타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2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선거구를 만들기 위해 합의가 안됐다고 한다"면서 "여야가 합의해 지침을 줘야하는 상황이라면 과연 무엇 때문에 획정위를 만들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획정위의 독립성이 훼손된 원인은 위원 구성, 의결 구조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획정위원은 학계, 법조, 언론, 시민단체, 정당에서 추천받아 위원회를 구성하게 되는데, 실질적으로는 여야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에 따라 여야 성향 위원이 각 4명씩, 선관위 추천 인사 1명 등 모두 9명으로 구성돼 있다.


구성원을 보면 의결정족수는 한명이 캐스팅보트를 쥐는 과반수가 적절하지만 법에는 3분의 2로 명시돼 있다. 국회선진화법과 마찬가지로 위원들의 합의를 강조하기 위해 의결정족수를 끌어올린 것이다.


김 정책위의장은 "위원이 여야로 나뉜 상황에서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서 "3분의2 찬성을 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의결정족수를 과반수로 완화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제안한 바 있다.


물론 근본적인 책임은 위원회를 만든 정치권이 질 수밖에 없다. 세부적인 획정기준을 마련하지 않아 위원회의 혼란이 키웠고, 획정위 구성과 의사결정 구조를 만든 곳도 국회이기 때문이다.


여야는 지난해 획정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인구산정기준일, 인구편차 등을 각호로 넣는 방식의 공직선거법 25조1항 개정에 집중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현행법 조항에는 '국회의원지역선거구는 시·도의 관할구역안에서 인구·행정구역·지세·교통 기타 조건을 고려해 이를 획정하되, 자치구·시·군의 일부를 분할해 다른 국회의원지역구에 속하게 하지 못한다'는 큰 기준이 명시돼 있는데, 인구산정일과 편차 등을 넣어 획정위의 권한을 확대하고자 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이 같은 미비점을 해결하기 위해 이번에 획정위에서 선거구획정안이 제출될 경우 심의과정에서 이들 항목을 법에 명시하기로 했다.


새누리당 중진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과거 국회에 선거구획정위가 설치됐을 때는 여야가 어떤 식으로든 획정안을 마련했다"면서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획정위를 외부에 둔 것은 오히려 개악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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