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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에 해후한 朴·金…이제는 '맞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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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에 해후한 朴·金…이제는 '맞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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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임기 중 처음으로 국회 특별연설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해후(邂逅)했다.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제분야에서 사제(師弟) 관계를 맺었던 두 사람은 2년여 세월을 거쳐 정치적 '맞수'로 다시 대면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40분께 국회 특별연설에 앞서 정의화 국회의장, 정갑윤ㆍ이석현 국회부의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원유철 원내대표,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과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여야 관계자들에 따르면 비공개 회동에서 박 대통령은 김 대표에게 '오래간만입니다'라며 인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박 대통령은 여야 지도부에 대북정책의 당위성과 쟁점법안 등의 처리를 당부한 데 이어, 김 대표와 3분 가량 독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회동은 10여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복잡한 속사정들이 얽혀있다. 김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개국공신' 중 한 명이지만, 박 대통령과는 미묘한 긴장관계를 유지해 왔다.

김 대표는 대선을 앞둔 지난 2011년 박 대통령의 삼고초려를 통해 새누리당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다. 발탁 이후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의 대선캠프에서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맡아 시대의 화두였던 '경제민주화' 정책을 총괄했다. 당시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의 '멘토(Mento)'로 통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정책의 향방을 둘러싸고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했다. 김 대표의 강도높은 재벌개혁 요구를 박 대통령이 수용하지 않으면서다. 김 대표는 결국 경제민주화 공약발표회에 불참했고, 대선 직전 복귀했지만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보다 경제활성화에 정책 초점을 맞추면서 김 대표는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결국 두 사람은 지난 2014년 3월26일 요아힘 가우크(Joachim Gauck) 독일 대통령이 주최한 오찬에서 박 대통령과 만나 안부를 묻는 대화 정도를 나눈 후 사실상 결별 했다.


미묘한 두 사람의 긴장관계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1월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가 내홍을 수습할 카드로 김 대표를 전격 발탁하면서부터다. 문 전 대표가 전권을 이양한 후 사퇴하면서 김 대표는 일약 제1야당의 당수가 됐고,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 각종 쟁점법안ㆍ선거구획정을 두고 대척점에 서게 된 것이다.


김 대표의 취임 이후에도 박 대통령과의 미묘한 관계를 시사하는 일들이 이어졌다. 지난 2일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김 대표가 보낸 박 대통령의 생일 축하 난(蘭)을 세 차례에 걸쳐 사양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박 대통령은 현 수석을 질책 한 후 다시 축하 난을 받았지만, 이를 두고 적지않은 뒷말이 오고가기도 했다.


청와대 문건파동의 주역인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영입도 두 사람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지 관심사다. 문건유출 사건은 비선실세 논란과 더불어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타격을 준 사건이었던 만큼, 조 전 비서관의 영입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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