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푸드스토리]과메기 클럽의 놀라운 대화를 엿듣다

시계아이콘05분 10초 소요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글자크기

빈섬의 '깨작깨작'

<에디터 주>겨울철 포항 죽도시장과 구룡포시장에는 과메기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야기는 포항과 인연이 있는 역사속 인물과 현재의 인물을 ‘미래의 가상현실’로 불러내 풀어냈다.

이야기의 배경은 2157년 포항 남빈동 뒷골목의 한 식당. 이곳에 연오랑과 세오녀를 비롯해 시인 박목월, 매월당 김시습, 청하현감으로 근무했던 겸재 정선, 일제시대 경주 교동의 최부자로 불렸던 최준, 일본 가가와현의 어부 하시모토 젠키치, 구룡포 시인 권선희씨가 자리를 같이했다.


그들이 말하는 ‘상상속의 과메기 세미나’. 과메기의 모든 비밀이 발가벗겨진 현장. 포항과 인연이 있는 다양한 인물이 풀어내는 '군침나는 썰'을 엿듣는다.

.............



유월 하루 버스에 흔들리며
동해로 갔다


선을 보러 가는 길에
날리는 머리카락


청하라는 마을에 천희(千姬)
뭍에 오른 인어는 아직도 가만히 머리카락이 젖어 있었다.


왜, 인연이 맺어지지 않았을까.
따지는 것은 어리석다. 그것이 인간사.


지금도 청하라는 마을에는 인어가 살고 있다.
칠빛 머리카락이 설레는 밤바다에는 피리 소리가 들리곤 했다.


'청하'의 일부 - 박목월


[푸드스토리]과메기 클럽의 놀라운 대화를 엿듣다 경주가 낳은 시인 박목월.
AD



박목월의 시 ‘청하’는, 선을 본 여인을 평생 그리워하는 노시인의 푸른 내면을 드러내면서 우리를 애틋하게 출렁이게 한다. 그때 목월이 만났던 천희는 누구였을까.


2157년 정월 초하루, 포항 남빈동 뒷골목 ‘해구식당’에서 특별한 모임이 있었다. ‘과메기 비밀클럽’이라는 이 모임은 신라 때부터 지속되어 온 극비단체였다. 이날 신라의 연오랑이 일본으로 간 해(아달라이사금 4년) 2000주년을 기념하여 식탁 몇 개가 다닥다닥 붙은 좁은 식당에 비밀회원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그곳에는 박목월 시인이 보였다. 그의 시에 나오는 천희는 동해용왕의 아름다운 딸인 ‘청어(靑魚)공주’가 화신한 그 모습이었을까. 저 시 한 편으로 목월은 과메기클럽 비밀회원이 되었다. 그 자리에는 그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천희도 나타났다. 새까만 머리카락을 바람에 흩날리며 식당의 유리문을 삐걱 열었을 때, 시인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부신 그곳을 바라보았다. 손에는 파도를 멈추게 한다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을 들고 있었다.


이윽고 연오랑, 세오녀가 함께 들어왔다. 모두 마법에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맞았다. 또 이 자리에는 매월당 김시습도 보였고 145년전 스토리텔링을 하던 빈섬도 앉아 있었다. 청하현감으로 근무했던 겸재 정선, 일제시대 경주 교동의 최부자로 불렸던 최준, 일본 가가와현의 어부 하시모토 젠키치, 구룡포 시인 권선희도 자리를 함께 했다.


권 시인은 ‘매월여인숙’이란 시로 유명하다.


나 오늘 기필코
저 슬픈 추억의 페이지로 스밀라네
눈 감은 채
푸르고 깊은 바다
흉어기 가장 중심으로 들어가
목단꽃 붉은 이불을 덮고
왕표연탄 활활 타오르는
새벽이 올 때까지
은빛다방 김양을 뜨겁게 품을라네


'매월여인숙' - 권선희



[푸드스토리]과메기 클럽의 놀라운 대화를 엿듣다 포항시인 권선희


하필이면 매월여인숙인가. 평생 방랑자로 산 매월당 김시습의 육신 자체가 하나의 '여인숙'이었던가. 권선희는 동해의 비릿한 냄새 속에서 청어를 품에 넣은 매월당과 접신(接神)하며 저 시를 썼을 것이다. 매월당은 한때 포항 대보면의 월명사에 머물렀고 청어 과메기를 즐겼다. 방랑길에 오를 때면 허리춤에 된장떡과 말린 청어를 차고 다녔는데, 물고기에 된장을 발라 구워먹었다고 한다. 어숙권의 ‘패관잡기’에는 세조가 원각사에 재실을 짓고 승려 김시습을 불렀을 때, 왕 앞에 누더기옷을 입은 그의 품 안에서 말린 청어 한 마리가 툭 떨어지는 바람에 세조가 기겁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제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권 시인이 말을 꺼냈다.


“연오랑의 도일(渡日)을 기념하는 날, 귀하신 클럽회원님들을 이곳에 모신 뜻은 170여년간 오직 과메기만을 전문으로 해온 식당인지라 맛이 괜찮기 때문입니다. 살이 통통하게 올랐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이 보이시지요? 영하 5℃와 영상 5℃ 사이에 초속 6m의 바람으로 보름간 숙성시켜 이렇게 맛깔스러운 꾸덕꾸덕함을 만들어낸 것이죠. 과메기로 쓰는 고기는 원래 청어였는데, 1960년대 무렵 동해 바닷물이 따뜻해지는 바람에 이 물고기가 더 차가운 쪽으로 이동해가버린 일이 있었죠. 이때부터 대용으로 꽁치를 썼습니다. 2013년경부터 어찌된 일인지 청어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다시 청어과메기가 식탁에 오른 건 그 덕입니다. 청어맛이 좋다 하지만 영양소만큼은 꽁치가 더 뛰어나죠. 아시겠지만 과메기는 아이를 자라게 하고 학생의 머리를 좋게 만들고 남자의 체력을 돕고 여자를 예쁘게 하고 노인을 늙지 않게 하는 5덕을 갖춘 건강식이라 합니다. DHA와 핵산(해풍 건조과정에서 풍부해짐)의 작용 때문이죠. 아, 그리고 이 식당은 초고추장 맛도 예술입니다.”


목월 시인이 거들었다. “저도 포항에 들르면 과메기를 자주 먹었습니다. 예전에는 과메기를, 가난한 선비를 살찌우는 고기라 하여 ‘비유어(肥儒魚)’라고도 불렀지요. 과메기 속에는 동해 바다가 숨쉬고 있고, 오오츠크해에서 한반도를 돌아 서해안으로 올라가 중국에 이르는 한중일 삼국지가 들어앉아 있으며, 삼국시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영일만의 출렁이는 역사가 도사리고 있지요. 과메기는 그냥 음식이 아니라 신국(神國, 신라)에 내린 축복의 음식이며 식민지 조선팔도의 굶주린 백성을 구제했던 은총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청하현감 시절 과메기를 즐겼던 겸재 정선이 말을 이었다. “예. 저 또한 과메기를 먹으면서 푸른 바다의 기운을 느꼈습니다. 원래 청어의 눈을 꼬챙이로 꿰어 말린 것을 ‘관목어(貫目魚)’라 불렀는데 그것이 변하여 과메기가 된 것입니다. 겨울날 시골 부엌 살창에 고기를 걸어두면 그곳을 빠져나가는 연기를 자연스럽게 쐬면서 훈제가 되었지요. 당시 관청의 기록을 들여다보니 영일만의 특산품 중에서 궁궐에 진상하는 것은 관목청어밖에 없었다고 적혀 있더군요.”


빈섬이 거들었다. “예,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 책에는 청어를 ‘연관목(燃貫目)’이라고 불렀는데, 연기로 훈제를 만드는 것을 표현한 낱말입니다. ‘규합총서’는 청어의 두 눈이 서로 통하여 말갛게 마주 비치는 것이 상품(上品)이라고 추천하고 있더군요. ‘동국여지승람’에도 청어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일만에서 처음으로 잡은 청어가 왕실에 진상되고 나서야 동해 전체 해안의 고기잡이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왕실에서 가장 먼저 맛보는 굉장한 음식이었던 셈입니다. 이제 연오랑께서 과메기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푸드스토리]과메기 클럽의 놀라운 대화를 엿듣다 1999년 포항 호미곶 해맞이공원 조성당시 황대봉 대아그룹 명예회장의 성금으로 건립된 연오랑과 세오녀상.



“예. 이건 그저 우리끼리 나누는 비밀스러운 대화이니 오프더레코드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아달라왕의 아우입니다. 우리는 홋카이도에서 청어잡이를 하던 어부였습니다. 큰 내란이 일어난 뒤 우리는 그곳을 떠났고 일본을 거쳐 신라에 오게 되었지요. 눈과 귀가 크고 수염과 구레나룻이 성성한 형은 신국에서 추앙을 받아 이사금이 되었지요. 권력을 쥔 형은 나의 안위를 걱정하여 인적 드문 바닷가에 몰래 숨겼습니다. 청어잡이에 능했던 아우인지라 어부생활을 하며 잘 살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죠. 저는 영일만에서 아름다운 신라 여인인 세오녀와 결혼을 했고, 어부들에게 청어 잡는 법과 과메기 만드는 법을 가르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신라 궁궐에서 암투가 벌어지면서 나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세력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달라에 충성하던 귀족들이 영일만으로 군사를 보내 나를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그래서 무작정 바다로 달려갔는데 마침 큰 귀신고래가 해안으로 다가왔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그 위에 올라탔습니다. 고래는 쏜살같이 내달려 일본 시코쿠의 북쪽으로 데려갔습니다. 해안에서 정신을 잃고 누워있던 나를 치료한 그곳의 어부들은, 내 형상이 범상찮은 인물로 여겨졌던지 곧 지도자로 모시더군요. 저는 그들에게도 청어잡이와 과메기 조리법을 가르쳤지요. 얼마 후 아내가 그리워 동해 너머로 배를 보냈습니다. 일본으로 건너온 세오녀는 여왕이 되었지요. 신라여인의 미모가 빛을 발했습니다. 그녀는 시코쿠의 여인들에게 베 짜는 기술을 알려주었습니다. 세오녀가 온 지 얼마 안 있어 신라에는 일식(日蝕)이 일어났는데, 다투던 파벌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다가 연오랑이 일본에 갔기 때문에 해가 없어진 것이라는 해괴한 주장을 폈다 합니다. 실제로 나를 다시 모시겠다며 신라의 사신이 찾아왔습니다. 지혜로운 여왕 세오녀는 스스로 짠 비단을 내놓으며 이것을 가지고 가 귀하게 모시고 제사를 지내면 재앙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잘 넘긴 것이지요.”


이때 빈섬이 말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연오랑과 세오녀의 비밀을 새롭게 알게 되었군요…. 이번엔 조선의 경주 최부자께서 이 클럽 회원이 되신 내력을 듣고 싶습니다.”


최준이 일어섰다.


“저는 과메기 마니아였습니다. 해마다 겨울이면 영일만에 와서 어마어마한 양의 청어를 사서 과메기를 만들었습니다. ‘과메기 재테크’라 할까요. 그렇게 번 돈을 독립자금으로 쓴 것입니다. 저는 집에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과메기 접대 원칙’을 만들었지요. 상객(上客)은 매끼 식사 때마다 한마리씩은 얹도록 했고, 중객은 반마리, 하객은 4분의1 마리를 놓았습니다. 100명 이상이 몰려와 노비집에 손님을 분산해야 할 때는 그들 각자에게 과메기 한마리와 쌀을 보냈지요. 길손이 돌아갈 때는 반드시 과메기 한 손(두 마리)과 하루치 양식을 쥐여드렸습니다. 과메기는 겨울철 주린 사람을 구제하는 귀한 음식이었고, 특히 나그네들에겐 중요한 영양보충제였습니다.”


[푸드스토리]과메기 클럽의 놀라운 대화를 엿듣다 과메기에 쓰이는 청어.



최부자의 말에 박수가 쏟아졌다. 목월 시인이 일어나 말했다.


“최부자의 말씀에 크게 공감 가는 것이 1930년대 경북 지역에서 한해 겨울철에 벌어들이는 소득이 300만원이 넘었다고 합니다. 1924년 한 신문에는 영일만의 청어 어획이 겨울 두달 새 5천만마리였다는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청어어업이 조선의 경제를 움직이던 때였지요. 포항엔 조선인뿐 아니라 일본인까지 어업에 가세하여 서로 경쟁도 치열했다고 합니다.”


이때 일본인 하시모토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일어섰다.


“예, 맞습니다. 저는 당시 구룡포에 살았습니다. 하루에 수십만 마리가 잡히기도 하는 황금어장이었지요. 저는 그 미명(未明)의 시간을 잊지 못합니다. 고기잡이를 떠난 어부들은 새벽에야 돌아옵니다. 아직 깜깜한 어둠 속의 항구에는 어부 가족과 상인들이 돌아올 배를 기다리며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배가 당도했다!’고 누군가 소리치면 사람들은 달려가며 환호성을 지릅니다. ‘만선이다!’ 이 소리를 들으면 기뻐서 울었습니다. 청어배가 만선이면 포항이 흥청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때 빈섬이 문득 물었다.


“혹시, 구룡포 적산가옥의…?”


하시모토는 순간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예. 제가 일제 때 청어잡이로 구룡포 전성시대를 일으켰던 그 일본인입니다. 저는 일본의 4개 섬 가운데 가장 작은 시코쿠 북쪽 끝 가가와현의 어부입니다. 바다를 사이에 둔 주코쿠 어민과 분쟁이 잦았지요. 그래서 좁은 바다를 빠져나가 포항에 머물렀지요. 포항은 제 조상들의 고향이었거든요. 1945년 광복이 되면서 우리는 몸만 빠져나왔습니다. 부두의 모든 것들, 집안의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둔 채로….”



[푸드스토리]과메기 클럽의 놀라운 대화를 엿듣다 과메기



그때, 말없이 술을 들이켜며 과메기를 뜯던 김시습이 불쑥 말을 내뱉었다.


“공수래 공수거(空手來空手去)이니 하늘도 인생도 사청사우(乍晴乍雨, 잠깐 갰다 잠깐 비왔다 함, 매월당 시의 한 구절)로다. 왜인(倭人)의 고향이 영일(포항)이었다는 얘기는 어떤 뜻이오?”


다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 일본인은 대답했다.


“예.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우리가 연오랑과 세오녀의 먼 자손이라는 얘기를 듣고 자랐지요. 동해 너머에서 온 늠름하고 아름다운 두 사람이 우리에게 청어잡이와 과메기 만드는 기술을 가르쳤다고….”


갑자기 동해 파도 소리가 쏴아 들리는 듯했다. 천희가 문득 만파식적을 불었다. 차가운 바람이 창을 치는 겨울밤, 푸른 물고기 한마리가 2천년의 시간을 넘어 퍼드득 뛰어 달려오는 듯한 피리 소리.


곁에 있던 목월이 시 ‘청하’의 끝부분을 읊으며 문득 오열을 섞었다.


바람에 날리는 나의 백발에 천희가 헤엄친다.
인연의 수심(水深) 속에 흔들리는 해초 잎사귀.


'청하'의 일부 - 박목월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