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북한 핵실험에 한국은 경악했지만 중국은 미지근하다. 중국을 지렛대 삼아 북한을 압박하려는 한국의 계획은 차질을 빚고 있다. 중국은 왜 대북 제재에 소극적일까. 그게 아니라 우리가 중국을 '우리 편'이라고 오해해온 것일까. 중국이 적극적으로 움직여줄 것이란 기대는 과연 적절한 것이었나.
◆朴, 시진핑에게 영상메시지를 보내다 =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전국에 생방송된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에서 '어려울 때 손 잡아주는 게 최상의 파트너'라며 핵실험 후 전화통화에도 응하지 않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서운함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사드(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한반도 배치 검토 가능성을 언급했다.
중국은 사드 한반도 배치가 자국을 위협하려는 미국의 전략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3NO 정책(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을 고수해온 것도 중국의 이런 걱정을 의식한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박 대통령은 "국익에 따라 사드배치 여부를 검토해나갈 것"이란 한 발 진전된 메시지를 이 시점에서 중국에 날렸다. 당장 '우리 편에 서 달라.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우리도 사드로 북핵에 맞서야 할 것'이라는 압박으로 해석됐다. 중국은 "신중히 처리하기를 희망한다"며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핵실험 전(前) 중국의 태도 그리고 한국의 해석 = 박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정상외교를 통해 중국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주력해왔다. 독자들은 박 대통령이 취임 초 중국 대학에서 중국어로 연설한 일, 화려한 한복을 입고 행사장에 나타나 현지 언론의 찬사를 받은 일 등을 기억할 것이다. 중국 인민의 마음을 움직여 한국에 대한 좋은 여론을 조성하면 중국 지도부가 한국 외교정책에 협조할 수 있는 명분이 될 것이라고 박 대통령은 판단했다.
시 주석이 박 대통령에게 최상의 의전을 제공했다거나, 다른 나라 정상과는 악수만 하고 헤어졌지만 박 대통령과는 장시간 화기애애하게 대화했다느니 하는 소식들이 이어졌고 정부는 "한중관계가 역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고 자축했다.
청와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 주석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한국의 대북 정책에 공감을 표했다고 전했다. 또 한중 정상이 '북핵불용' 원칙을 재확인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하자 이런 설명과는 정반대의 일이 발생했다. 중국이 움직여주지 않는 것이다.
시 주석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찬성한 것은 그 개념 자체가 원론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대화의 문은 열어두되 도발에는 강력 대응한다'는 원칙에 찬성했다고 해서, 중국이 어떤 행동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구속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아울러 '북핵불용'은 한국만의 생각이지 중국은 단 한 번도 북핵불용이란 말을 쓴 적이 없다. 대신 '한반도 비핵화'라고 한다. 남북한을 통틀어 '비핵화' 원칙을 견지한 것인데, 이를 두고 한국이 '중국은 북핵을 반대한다'고 너무 넓게 해석해온 측면이 있다.
◆중국에게 북한이란? = 핵 문제에 있어 중국의 원칙은 3가지로 요약된다. 한반도 비핵화(북핵불용이 아닌), 한반도 평화와 안정, 대화를 통한 해결 등이다.
중국에게 있어 북한은 미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과 본토 사이 완충지대를 의미한다. 강력한 대북제재를 통해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경우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올 난민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한미 연합군에 의한 북한 지역 점령 그리고 북중 국경선에 미군 주둔이라는 시나리오는 중국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이다.
이런 이유에서 중국이 대북 송유관 차단과 같은 치명적 제재를 감행하지 않는 것은 북핵에 '무르게' 대응해서가 아니라 중국 스스로의 필요에 의한 것이다. 시 주석이 박 대통령과의 '좋은 관계' 때문에 이런 국가적 위험을 감수해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시 주석은 아마도 북한정권이 붕괴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충분한 경고'를 줄만한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을 수 있다.
◆소용돌이 치는 동북아 안보, 한국의 선택은? = 중국 정부의 특성으로 미루어 볼 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움직임에 대한 중국의 공식입장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고민 자체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미국이 한반도 상공에 B-52 전략 폭격기를 띄운다거나, 한국이 사드를 거론하는 등 격앙된 행동에 나서고 있는 것이 중국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를 재확인 시켜주는 주변국의 격앙된 움직임이 중국으로 하여금 기존 대북 정책기조를 그대로 고수할 유인을 제공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뿐 아니라 미국도 북핵문제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안보지형은 당분간 이 상태로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변수라고 한다면 북한이 2월 한미연합군사훈련, 5월초 당대회를 기점으로 군사도발에 나서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방치' 속에 북핵 문제는 남북 간 대화모색 쪽으로 돌파구를 찾을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통일 문제를 비중 있게 거론하며 대화의지를 밝힌 바 있다. 박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대북 제재 추진, 중국과의 파트너십 복원 등 난제들을 어떻게 병합하거나 분리할 것이냐는 향후 동북아 안보상황을 결정짓는 중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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