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노출 꺼리는 집주인들때문에
계약 때 조항 다는 사례 늘어
월세 증가해 갈등도 늘어날듯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서울 강남에 사는 김세영씨(가명·35)는 지난해 월세계약을 맺으면서 세액공제를 받지 않겠다는 조항을 달았다. 집을 구하기 쉽지 않았던데다 합리적인 가격이 마음에 들어 하루 빨리 계약을 원했던 김씨는 다소 꺼림칙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예 월세를 더 올려 받는다"는 중개업소의 반 협박에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곧 연말정산을 통해 월세 세액공제를 신청하라는 회사의 주문에 김씨는 갈등하고 있다. 공제를 신청하자니 약속을 깨게 되는 것이고 포기하자니 권리를 잃는 것으로 생각돼서다.
직장인들에게는 '13월의 월급'이라 불리는 연말정산 시즌이 돌아오면서 월세계약자들이 이중고통을 겪고 있다. 특히나 월세 계약이 크게 늘어난 이후 오피스텔은 물론 다가구주택 등의 세입자들이 세액공제를 둘러싸고 미리 세액공제를 하지 말라고 당부를 받았거나 계약체결 당시 암묵적 확약을 한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더구나 지난해부터는 월세가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대상자가 늘어나 혜택이 적지 않다. 전용면적 85㎡ 이하에 살면서 연봉 7000만원 이하 무주택자라면 몇가지 조건을 충족해 연간 납부액의 10%, 최대 75만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임대차계약증이나 계좌이체영수증 등 월세를 낸 내역이 있어야 한다. 집주인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가능하나 소득 노출을 꺼리는 집주인이 원치 않는 경우가 많아 실제 신청하는 이가 많지 않다.
서울 강남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월세가 비싼 강남권에서 계약서에 (세액공제를 신청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명시하는 일이 늘었다"면서 "서로간 불편한 내용인 만큼 계약이 끝나 서로 마주할 일이 없을 경우 신청하는 사례도 빈번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사전에 중개업소나 집주인과의 약조를 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세액공제를 둘러싼 갈등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저금리로 전세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돌리는 준전세나 매달 수백만원씩 부담하는 고액월세가 늘면서 월세 세액공제를 둘러싼 크고 작은 분쟁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지역 아파트 월세거래는 5만8153건(보증부 월세 포함)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3% 이상 늘었다. 국토부에 신고한 실거래가 자료를 토대로 월세 100만원이 넘는 건수는 지난해 11월 한 달에만 296건으로 전체 임대차 거래에서 6.4%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세무당국은 월세 세액공제 대상을 확대하면서 신청을 장려하고 있다. 무주택 서민을 지원하면서 세원을 좀더 구체적으로 파악하려는 목적에서다. 그럼에도 일선 현장에서는 아직 해당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집주인의 강요로 신청을 고민 중인 세입자가 많다. 임대소득사업자가 아닌 집주인으로서는 세액공제를 신청할 경우 월세 소득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월세 계약을 맺을 당시 약속한대로 확정일자 신고를 하지 않았더라도 전입신고를 한 상태에서 월세를 납입한 증명이 있으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이서호 세무사는 "내년까지 연 2000만원 이하 임대소득 과세가 유예됐으며 이후부터는 14%로 분리과세가 적용될 예정"이라며 "월세 세액공제는 상호간 동의가 아니라 세입자가 월세를 냈다는 사실만 입증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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