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시계, 내부자 시계, 김정은 시계가 돌고있다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2016년 1월 8일. 세 개의 시계가 대한민국을 뒤숭숭하게 하고 있다.
하나는 삼성의 시계, 또 하나는 ‘내부자들’의 시계, 다른 하나는 북한 김정은의 시계다.
경제의 시계는 지금 몇 시인가. ‘기어S2’로 상징되는 삼성의 스마트 워치 전략은 작년 삼성이 야심차게 추구한 ‘웨어러블 진화’의 예봉이었다. 오늘 발표한 4분기 잠정실적은, 전분기에 비해 영업이익이 크게 떨어져, 이 기업의 분투를 무색하게 했다. 올 전자업계의 보릿고개를 예고하는 ‘어닝 위기’는 반도제 D램과 낸드플래시를 비롯한 디스플레이의 부진도 있지만, 핵심은 스마트폰 시장이 식어가는데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삼성의 시계는 지금, 깊어가는 불황 속에서 깊어가는 불안을 담고 조마조마하게 돌아가고 있다.
정치와 사회의 시계는 몇 시인가. 작년 11월에 개봉된 영화 ‘내부자들’은 관객 700만명을 빨아들인 흥행작이다. 영화는 우리 사회 깊숙이 스며들어있는 부정부패의 속살을 충격적인 방식으로 드러내서 화제를 모았다. 영화 속에는 대선 후보로 나오려는 정치가인 장필우(이경영 열연)에게 롤렉스 시계를 선물하는 장면이 나온다. 뇌물시계가 부정부패의 단골임을 상징하는 대목이다. 2013년 금감원 직원 신모씨는 터미널 시행사 대표에게서 고가의 롤렉스시계를 받은 혐의로 5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2009년 박연차회장 수사 때에는 1억원 짜리 피아제 시계를 당시 노대통령에게 줬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최근의 경우로는 민영진 전 KT&G 사장이 중동 담배업체로부터 4500만원 짜리 파텍 필립 시계를 받았고, 자리를 같이 한 KT&G 직원들도 롤렉스시계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뇌물시계는 정부의 끝없는 사정칼날에도 끄떡없이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들이다. 뇌물로 드러난 명품시계들을 바라보며 금수저 흙수저 뿐 아니라, 시계를 찬 손목도 금손목 흙손목이 있음을 씁쓸하게 실감하게 된다. 영화 ‘내부자들’을 보면서 보통사람들이 느낀 공분과 충격은 현실의 뇌물시계 위에서 거듭 현기증나게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남북관계의 시계는 몇 시인가. 북한은 1월7일 수소탄핵실험 명령서에 서명하는 김정은의 사진을 공개했다. 그의 왼손에는 어김없이 손목시계가 보였다. 작년 8월 남북이 일촉즉발의 긴장을 이어갈 때, 대북 확성기를 중단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겠다고 위협하던 김정은은 시계를 보는 동작을 취했다. ‘시한부 선전포고’임을 상징하는 전략적 행동이었을 것이다. 극적인 협상으로 확성기 방송은 멈췄고, 긴장 상황은 해소되었지만, 오늘 136일만에 다시 확성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보복조치의 일환이다. 김정은이 차고 있는 시계는 ‘인민시계’인 ‘모란봉’이 아니라, 1억원대를 호가하는 명품 ‘파텍 필립’이다. 이 파텍 필립은 KT&G 경영자가 얻어 찼다가 철퇴를 맞은 바로 그 시계가 아닌가. 김정은의 시계만 들여다 봐도, 그가 외치는 인민에 대한 구호들이 겉도는 것임을 느낄 수 있다. 그는 다시 자신의 시계를 들여다 보며, 대북 확성기에 대한 보복 도발 시기를 재고 있을지 모른다. 남북교류의 시계, 혹은 평화통일의 시계는 거친 굉음을 내며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오늘이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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