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두 악기社…피아노시장서 생존 위한 비장의 카드
56년생 영창, 무겁고 묵직한 피아노소리
2년 후 설립 삼익, 가볍고 투명한 느낌
두 살 차 라이벌, 경쟁으로 기술 혁신
외환위기 때 시장 위축으로 최대 고비
이후 사업다각화로 제2의 경쟁 예고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한때 집집마다 피아노가 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과 함께 피아노는 상류층의 전유물에서 국민악기로 등극했다. 혁혁한 공을 세운 업체는 삼익악기와 영창뮤직(옛 영창악기)이다.
두 회사는 합리적인 가격에 고품질의 피아노를 선보이며 쑥 커나갔고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도 1,2위를 다투는 브랜드로 성장하게 됐다.
80~90년대 들어 한국은 일본, 미국, 독일 등과 함께 세계 4대 악기수출국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명(明) - 2살 터울의 치열한 경쟁, 세계 시장 석권 견인차
삼익악기와 영창뮤직은 세계적인 악기회사로 성장하기까지 쉼 없는 경쟁을 벌여온 라이벌 기업이다. 한때 세계 악기시장 절반이상을 점유했던 두 회사는 창업시기도 비슷하다.
1956년 설립된 영창뮤직은 지난 1971년 국내 최초로 악기 수출을 시작한 데 이어 1984년 업계 최초로 기업공개를 실시하기도 했다. 삼익악기는 영창뮤직보다 2년이 늦다.
두 회사의 성향은 초기부터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삼익의 피아노는 건반이 무겁고 소리가 비교적 묵직하고 성숙하다는 평가다.
반면 영창의 피아노는 건반이 가볍고 소리가 맑아 투명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이유에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선호도가 갈렸다.
두 회사는 신제품개발에도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삼익악기가 신개념 피아노를 출시하면 이에 뒤질세라 영창뮤직도 신제품을 선보였다.
또 영창뮤직이 급성장한 매출 수치를 내놓으면 삼익악기도 만만치 않은 실적을 발표하는 등 팽팽한 경쟁을 펼쳐 왔다.
물론 두 기업의 지나친 신경전이 비방전으로 번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삼익악기가 87년 디지털 피아노를 국내 최초로 개발하고 영창뮤직이 역시 소리를 선택적으로 없앨 수 있는 소음 피아노를 최초로 시장에 내놓는 등 1등을 향한 경쟁은 기술개발에 촉매 역할을 하는 긍정적인 면이 더 많았다는 게 업계 전문가의 분석이다.
이들의 경쟁이 국내를 넘어 전 세계시장에서 펼쳐지면서 두 회사는 중국과 동남아 지역 현지공장 건설도 경쟁적으로 펼쳤다.
◆암(暗) - 외환위기 타격에 두 회사 모두 새주인 맞아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두 회사도 1990년대말 외환위기의 된서리를 피하지 못했다. 당시 두 회사 모두 부도 위기에 빠진 것도 닮은 꼴이다.
과도한 시설투자와 매끄럽지 못한 경영승계 등이 겹쳐 삼익악기는 법정관리에, 영창악기는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비운을 맞았다.
결과적으로 두 회사는 모두 새로운 주인을 맞았다.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삼익악기는 2002년 건설ㆍ플랜트 업체 스페코로 인수돼 새로운 전환을 맞았다. 2004년에는 영창 인수를 시도했으나 독과점을 우려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동에 의해 무산됐다. 2004년엔 흑자로 전환했으며 현재는 매출 1500억원대에 올라서는 등 국내 1위 악기업체로 거듭났다.
2000년대 초반까지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었던 영창악기도 결국 2006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된 후 사명을 영창악기에서 영창뮤직으로 바꾸고 재기에 성공했다.
◆결론은 사업다각화…하지만 전략은 달라
암울했던 시기를 거친 이후 두 회사는 생존을 위한 방안을 모색한 끝에 결국 사업다각화를 택했다. 하지만 전략은 달랐다.
삼익악기는 화장품ㆍ향수 등 악기사업과 무관한 이종산업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영창뮤직은 본업인 악기분야를 더욱 전문화하면서 재도약을 다짐하고 있다.
최근 인천국제공항 DF11구역에 삼익면세점 매장을 열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 삼익악기는 향후 화장품 유통사업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은 "면세점 사업 시작과 함께 중국 내 500여곳의 삼익악기 대리점에 화장품ㆍ향수 코너를 만들어 화장품 유통사업에 진출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삼익악기는 독일 자일러와 벡스타인 등 세계 악기 시장에서 인정받은 고가 피아노 제품군을 필두로 중국 시장을 공략 중이다. 면세점 사업 외에도 교육 사업까지 외연을 넓히는 추세다.
영창뮤직은 전자악기 브랜드인 커즈와일을 내세워 디지털 음악 시장을 공략해 왔다. 시장확대를 위해 저가형 커즈와일 모델과 디지털피아노 제품군을 확충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디지털피아노를 통한 시장 확대와 커즈와일과 연계한 모바일 음원 플랫폼 서비스 등으로 전문성과 시장 확대를 동시에 잡는다는 계획이다.
또 최근에는 이어폰ㆍ헤드폰 브랜드 젠하이저와 손잡고 국내 오프라인 유통을 맡기로 했다. 대주주인 현대산업개발의 고강도 주문에 따라 이종사업까지 사업영역을 넓히는 모습이다.
중국은 양사 모두에게 매력적인 시장이다. 중국은 중산층 확대와 소득수준 향상으로 전세계 피아노 시장의 55%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거대 시장이다. 연간 36만대의 피아노가 중국에서만 소비되고 있다. 그럼에도 평균 피아노 보급율은 3~5%대로 추산된다. 선진국 25% 수준보다 크게 낮아 성장 가능성은 높다는 평가다.
현재까지는 삼익악기가 앞서고 있다. 삼익악기는 지난 2009년 독일 브랜드 자일러를 인수한 뒤 본격적인 중국 시장 성공기를 써왔다. 지난해 중국에서만 4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영창뮤직은 연간 50만대 이상으로 추산되는 디지털 피아노 시장에 승부수를 던졌다. 고가 제품뿐만 아니라 가격을 낮춘 보급형을 선보여 빠르게 전환될 것으로 보이는 디지털 악기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중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악기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면서 "삼익과 영창의 전략이 성공한다면 다시 한 번 국내 악기산업의 부흥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