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하면 자연스럽게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 그의 대표작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가 이 작품들을 쓰기 전 사형을 선고받고 집행 직전까지 갔다는 사실은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이 세계적인 고전들이 세상에 나오지 못할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는 얘기다.
166년 전인 1849년 12월 22일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도스토옙스키는 첫 소설 '가난한 사람들'이 당시 비평계의 거물 벨린스키의 인정을 받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전업 작가에 뜻을 두고 24살의 나이에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그에게 불운이 찾아온 것은 공상적 사회주의 경향의 폐트라솁스키 모임에 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미하일 폐트라솁스키가 주도한 이 모임은 샤를 푸리에 등의 저작을 연구하고 당시 러시아의 정치체제를 비판했다. 그런데 황제 니콜라이 1세는 이 같은 지식인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들의 사상이 러시아에 미칠 파장을 우려했던 황제는 급기야 1849년 폐트라솁스키 모임에 참여했던 33명을 체포해 도스토옙스키 등에게는 사형을 선고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죄목은 이 모임에서 당시 금서로 분류된 벨린스키의 '고골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한 것이었다. 이 편지는 러시아 민중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워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고 한다. 이른바 불온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할 위기에 처했던 도스코옙스키는 집행 직전 황제의 특사로 징역형으로 감형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극적으로 사형 집행이 취소된 것은 당대 지식인들을 죽음의 문턱까지 몰아넣은 뒤 살려줘 황제의 자비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니콜라이 1세가 직접 꾸민 일이라고 전해진다.
여하튼 이후 도스토옙스키는 시베리아에서 4년 동안 감옥 생활을 했고 출옥 후에는 5년 동안 사병으로 근무하며 형기를 채웠다. 사형 직전에 살아난 경험과 이후의 수형생활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됐고 그는 1881년 타계할 때까지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문제의식을 담은 수많은 걸작들을 남겼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