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한국교육방송공사(EBS)가 수능과 관계없는 교재를 밀어내기식으로 강매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를 받았다.
공정위는 '고교 참고서시장 1위'라는 시장 지위를 남용한 EBS에 과징금 3억5000만원을 부과하고 시정 명령했다고 15일 밝혔다.
EBS는 고등학교 3학년용 수능교재를 구매하려는 총판업자에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1∼2학년 참고서도 강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판은 여러 출판사의 교재를 사들여 학교, 학원, 서점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곳이다. 주요 고객은 지역의 소형서점이다. 지역서점은 매출의 90%가 학습 참고서이기 때문에 총판이 EBS 교재를 취급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워지는 구조다.
EBS는 주기적으로 총판을 평가해 계약 유지 여부를 결정했는데, 수능 비연계 교재의 판매실적을 수능 연계 교재보다 최대 5배까지 높게 책정했다. 평가점수가 저조하면 총판 계약을 종료하는 불이익을 줬다. 총판이 수능시험과 연계되는 EBS 교재를 취급하려면 초·중학교 참고서도 다른 출판사 대신 EBS 것을 살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남동일 공정위 제조업감시과장은 "정부 정책으로 획득한 독점력을 이용해 매출이 저조한 수능 비연계 교재 판매를 강요한 것은 총판의 이익을 저해한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후생을 감소시킨 불공정행위"라고 설명했다.
EBS는 총판들의 거래 지역을 엄격히 제한해 경쟁을 차단하기도 했다. 다른 지역에 교재를 공급하는 총판에는 경고하거나 경위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총판들 사이 경쟁이 없어지면 서점도 교재 가격을 할인하거나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등의 판촉 노력을 할 유인이 사라져 궁극적으로 소비자에겐 손해다.
EBS는 2009년에도 총판에 대한 거래지역 제한으로 제재를 받았으나 2013년부터 비슷한 불공정행위를 반복했다고 공정위는 밝혔다.
공정위는 이날 EBS 외에도 한국철도시설공단, 경기도시공사 등 모두 11개 공기업의 불공정행위를 적발해 과징금 33억원을 부과했다.
철도시설공단은 '수도권고속철도 수서∼평택 제4공구 건설공사' 등 3건의 턴키공사(건설사가 설계와 시공을 함께 수행하는 방식)를 발주하고서 설계변경계약을 했다. 철도시설공단의 필요에 따른 설계 변경이었지만 공단은 공사 단가를 임의로 내려 10개 시공사의 공사 대금을 부당하게 깎았다.
호남고속철도 노반(철도의 궤도를 놓기 위한 토대) 신설공사 등 14건의 설계변경 계약을 맺으면서는 시공사들이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간접비 지급 청구권을 아예 차단했다.
철도시설공단은 철도·궤도공사와 용역 발주를 독점적으로 하는 공기업으로, 건설사에 대한 영향력이 막강하다. 작년 발주규모만 5조4700억원에 이르는 국내 4대 발주기관이기 때문이다. 공단은 고용노동청에서 부과받은 과태료 1976만원을 시공사에 대납시켰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공사대금을 부당하게 깎은 경기도시공사(과징금 21억800만원), 충남개발공사(9600만원), 광주도시공사(시정 명령), 경북개발공사(경고) 등도 제재를 받았다.
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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