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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칼퇴'하라는 삼성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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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훈 삼성물산 사장, 회사 비판한 글에 "나 사장인데, 비밀 보장할테니 점심먹자" 댓글 달아
삼성 조직관리 변화 바람


[아시아경제 손선희 기자] 외국계 기업 출신인 최치훈 삼성물산 대표이사(사장)의 독특한 행보가 사내에서 화제다.

최 사장은 최근 수요일 오후 5시 정각, 본사 지원부서 사무실에 나타나 "왜 아직도 안 가고 일하냐"며 직원들에게 퇴근을 재촉했다. 삼성이 가족과 저녁을 함께 보내라는 취지로 그룹 차원에서 실시했던 '가정의 날(매주 수요일 칼퇴근)' 제도가 그동안 잘 지켜지지 않았었는데 이를 직접 장려하고 나선 것이다. 한 삼성물산 직원은 "사장님이 계단으로 매 층마다 돌아다니며 '얼른 집에 가라'고 떠밀어 깜짝 놀랐다"며 "야근을 곧 미덕으로 여기던 시절과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 사장은 사원급 직원과의 '격 없는 소통'으로도 유명하다. 직원과의 간담회에서 임원을 배석시키지 않고 사원급만 불러 진행해 비서진을 당황시키거나, 회사를 비판하는 사내 익명게시판에 직접 덧글을 달아 '나 최치훈 사장인데, 너무 좋은 글이다. 비밀 보장할테니 꼭 연락달라. 점심 같이 먹자'고 제안한 일도 있었다.

반면 고위 임원에겐 엄격하다. 최 사장은 본인이 직접 주재하는 임원들과의 회의를 전 직원이 볼 수 있도록 매번 사내방송으로 실시간 중계하고 있다. 최 사장은 이 자리에서 임원을 향해 '그건 당신의 욕심이다' '말이 안 된다' 등 신랄한 지적을 거침없이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를 지켜본 한 삼성물산 직원은 "보통 사장을 포함한 고위 임원회의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됐던 관행에 비하면 이례적인 광경"이라며 "현업 부서의 최고위 임원이 사장에게 직접 지적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처음엔 굉장히 낯설었다"고 전했다. 이 직원은 그러나 "임원보고 과정을 직접 지켜보고 나니, 업무의 배경과 시작을 모른 채 그저 하달되는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던 이전과는 확실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며 긍정적인 평을 덧붙였다.


최 사장은 과거 삼성SDI, 삼성카드 재직 시절에도 '행동하는 CEO'로 이름을 날렸다. 삼성카드 사장 시절에는 콜센터에 불만을 접수한 고객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돌발행동으로 임직원들의 귀감이 됐다. 본인의 집무실에 콜센터 접수고객과 통화하는 전화를 따로 두고, 서비스 개선을 제안한 고객에게 감사편지를 보내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최 사장의 이 같은 행보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삼성그룹이 현재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이른바 '관리의 삼성' 이미지로 알려진 삼성 특유의 철저한 조직관리도 큰 몫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임직원들은 최 사장과 마찬가지로 '좀 더 가벼운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일선 현장에는 여전히 직급을 내세워 상명하복(上命下服)식 복종을 요구하는 군대식 문화에 젖은 중간관리자 때문에 직원들이 고통받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삼성 계열사의 한 임원이 '젊은 친구들 버릇을 좀 고칩시다'란 제목의 메일을 통해 "젊은 철딱서니 없는 친구들이 사내 이동간에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다닌다"며 "(나한테 걸리면 귀싸대기 때리고 조인트 까고) 스마트폰 뺏어 버린다고 공지하라"는 내용을 보낸 사실이 알려져 파장이 일기도 했다.


이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 주요 계열사인 삼성전자도 최근 폭언ㆍ폭행 등을 을 '4대 악(惡)'으로 규정, 엄중히 경고하고 나섰다. 한 삼성 직원은 "후배에게 욕하고 뺨을 때리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행위가 '카리스마'로 여겨지던 구시대적 조직문화에 익숙한 임원이 아직도 많다"며 "회사에서 권장하는 비즈니스 캐주얼 옷차림처럼 조직문화도 시대적 변화에 따라 가벼워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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