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 감독 류승완
시민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는걸 보여줘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올해 최고 흥행작은 '베테랑(1341만5943명)'이다. 극장에서만 약 1052억원을 벌었다. 일개 형사가 사람 귀한 줄 모르는 재벌 3세를 단죄한다는 내용이다. 올해 히트한 한국영화들은 어두운 사회상을 반영하고,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권선징악으로 대리만족을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암살(1270만4656명)'과 '내부자들(358만9401명)'도 같은 코드를 짚어낸다. '암살'은 친일과 저항, 선과 악을 분명하게 구분해서 보여준다. 현실은 영화처럼 속시원하지 않다. 일제강점기에 패악을 일삼은 친일부역자들 가운데 염석진(이정재)처럼 죽은 자는 없다. 반민특위도 무의미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현재 대한민국의 지배계층으로 남아 역사를 다시 쓰려 한다.
'암살'을 연출한 최동훈(44) 감독은 이 암담한 현실을 매력적으로 비틀어 관객의 판타지를 자극했다. 그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주저없이 죽음의 길로 나서는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관객, 즉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들에게 요구한다. "우리 잊으면 안 돼"라고. '베테랑'을 연출한 류승완(42) 감독은 "우리가 똑바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류 감독은 "(관객 동원의 비결은) 관객이 느끼는 현실이다. 빈부 격차가 심해졌고 세습 자본주의가 확대되면서 서민의 삶이 어려워졌다. 잘못된 일에 맞서기도 불가능해졌고. 이런 갈증을 서도철(황정민)을 통해 풀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중고차 범죄만을 다루려고 했는데 규모가 커졌다. 언론을 통해 재벌가 인물들의 부도덕한 행태로 인한 사건을 접하면서 분노를 느꼈다. 관련 취재를 한 기자와 경찰을 만나 면밀히 조사했다. 자료가 쌓일수록 조태오(유아인)가 보였다. 관객의 공분을 풀어주면서 사회 정의라는 결론을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류 감독은 '돈으로 사람을 부려먹는 부류'를 관객 앞에 민낯으로 드러냈다.
류 감독의 영화는 일방적이지만은 조태오는 악역이지만 사악하면서도 솔직하다. 외국 바이어들 앞에서 대한민국을 걱정하지만 서도철과 같은 세계에 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트럭기사의 아들과 강아지에게 같은 과자를 준다. 이런 행위가 그에게는 배려이고 상식이다.
류 감독은 "조사해보니 재벌가 자제들은 남들보다 일찍 교육과 훈련을 받아 대부분 바르게 자란다. 조태오는 선천적으로 나쁜 인간은 아니지만 선악을 판단할 필요가 없는 시스템을 거치면서 비뚤어졌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격투 장면에서 서도철은 일반 시민의 응원을 받는다. 시민들은 조태호를 도망가지 못하게 에워싸고, 휴대폰으로 정당방위의 증거들을 찍어준다. 류 감독은 "모두가 힘을 합쳐 이루는 승리를 그리고 싶었다. 그렇게 모두가 똑바로 깨어서 세상을 지켜봐야 변화가 생긴다. 스스로의 의지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한다면 그 날은 더 빨리 다가올 것이다"라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