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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서거]김 前대통령과 하나회의 악연… 그리고, 육사 27기의 쓴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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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서거]김 前대통령과 하나회의 악연… 그리고, 육사 27기의 쓴맛 1988년 13대 총선에서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에도 밀려 제3당으로 내려앉은 뒤 정치적 반전을 시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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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김영삼 전 대통령과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와의 악연은 길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005년 7월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린 21세기경영인클럽 세미나에서 "지난 1993년 취임 직후부터 군사문화 청산에 혼신의 힘을 바쳐 그때까지도 여전히 남아 있던 하나회를 숙청했다"며 자신의 업적중에 하나는 하나회 숙청이라고 강조해왔다.

김 전 대통령은 "쿠데타를 주도했던 하나회는 쿠데타 방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었다"며 "수도사령관 혼자서도 쿠데타를 할 수 있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젊은 시절 내내 군사 정권과 싸워 왔었다. 그런 그가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정의당,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과 정치적으로 손을 잡는 결단을 내렸다. 이른바 '3당 합당'이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에도 밀려 제3당으로 내려앉은 뒤 정치적 반전을 시도한 것이다.

집권 여당의 대표가 된 김 전 대통령은 당 내부에서 자신의 세력을 차분히 키워가면서 군사정권 세력이 중심이던 '민정계'를 압박했다. 그리고 평생의 숙적인 DJ와 경제 신화의 주인공 정주영 후보와 맞붙은 3파전에서 DJ를 193만표차로 꺾고 대통령이 된다.


취임후 김 전 대통령은 하나회를 본격적으로 숙청하기 시작한다. 1993년 3월 당시 김진영 육군 참모총장과 서완수 국군 기무사령관을 전격 교체한 것이 시발점이다. 1980년 신군부세력 등장이후 군요직을 독점하다시피 해온 육군 내 하나회 인맥의 대수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김영삼 정권에서의 하나회 숙청 작업으로 큰 타격을 입은 것은 27기 이후의 기수였다. 선배 기수들까지는 하나회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두 장성 진급을 했지만, 이들부터는 오히려 하나회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 진급에서 탈락하는 비운을 맛보았다. 육사 27기가 장군 진급을 앞둔 그 시기에 하나회원 숙청 작업이 막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군부 쿠데타'를 걱정하던 시대였다. 국방부를 비롯해 전 정부가 보름동안 밤샘 비상 대기를 하며 군부 동향을 살폈다. 임기 중반인 95년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모두 구속시키고 1980년 쿠데타에 가담했던 신군부 인사들을 검찰이 기소하지 않자, 5ㆍ18 특별법 제정을 지시해서 결국 전원을 법정에 세우기도 했다.


하나회는 육사 11기생의 친목모임인 '칠성회'로부터 시작됐다.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등 영남출신 육사 11기생 7명이 초급장교시절이던 1958년 결성한 칠성회는 5ㆍ16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한 배려로 군부내 요직을 장악하면서 후배들을 끌어들여 1962년에 하나회로 발전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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