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안전처 출범 1년] <하> 미래는?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1995년 삼풍백화점ㆍ성수대교 붕괴 때 행정자치부 산하에 재난관리국을 만들었지만 5년도 안 돼 없애지 않았나."
지난 12일 국민안전처 출범 1주년 정책토론회에서 나온 국민안전처 실무책임자의 말이다. 안전처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출범했지만, 재난ㆍ안전 컨트롤타워로서의 위상ㆍ기능을 제대로 확립하지 않으면 자칫 얼마 가지 않아 존폐 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내부의 위기 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안전처나 시ㆍ도별 안전관리 전담 조직들은 요즘 온갖 사건ㆍ사고ㆍ재난에서 '해결사'나 '얼굴마담' 식으로 동원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안전처 고위 관계자가 "사고ㆍ재난이 터져서 회의를 열면 각 부처들이 자기들이 할 일은 안 하고 안전처 얼굴만 쳐다본다"며 "그럴거면 각 재난ㆍ사고 관련 실무 기관을 모두 다 안전처한테 넘겨달라고 얘길를 했더니 그때서야 자신들이 할 일을 찾기 시작하더라"고 호소할 정도다.
지자체 안전 관리 조직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박재철 제주도 안전관리실장은 "온갖 부서에서 안전에 관련된 사안을 들고 와서 '이건 당신 부서에서 해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한다"며 "한 방송사에서 토론회를 한다 길래 담당 부서 책임자를 추천했더니 '재난'이라는 제목의 토론회여서 무조건 우리한테 맡기더라"고 말했다.
이는 안전처는 물론 시ㆍ도의 안전 관련 조직들과 각 현업 부서·부처간의 세밀한 역할 분담ㆍ업무 분장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한 안전 정책 전문가는 "각종 사고ㆍ재난에 대한 일차적 대응ㆍ수습은 담당 현업 부서들이 맡고 안전처는 감시자ㆍ컨설턴트ㆍ개혁가로서의 역할을 확고히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안전처의 권한ㆍ역량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안전처는 추자도 돌고래호ㆍ오룡호 침몰 사고,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사태 등 중대 재난ㆍ사고에서 한 발 비켜서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뒷북 대응'을 했다는 비판이나 존재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사고ㆍ재난이 발생한 후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했는데 해당 부처의 반대로 '유야무야' 된 경우마저 있었다. 올해 초 의정부 도시형 생활주택 화재 사고가 대표적이다. 기존 주택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를 추진하다가 국토교통부 등 담당 부처에 밀려 백지화됐다.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는 "많은 기대를 하고 출범한 안전처가 중대 재난ㆍ사고에서 막상 유명무실하다는 것은 여러 사례에서 입증된다"며 "안전처가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게 정부 직제상 '부'로 승격시켜 권한을 주고 예산이나 제도적 뒷받침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부처의 독립성ㆍ전문성 강화도 과제로 지적된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대통령이나 정부 각 부처는 물론 기업, 지자체 등을 상대로 안전을 최우선시하면서 법ㆍ제도 개선에 앞장서려면 독립성ㆍ전문성이 첫번째 과제"라며 "안전처 핵심 수뇌부들이 허약한 토대에 대해 제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와 협력을 통한 안전사회 건설과 테러ㆍ감염병 등 신종 복합재난에 대한 대응체계 마련도 안전처가 직면한 숙제다.
부처의 위상 강화와는 별도로 국민 전체의 안전의식 개선도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특히 국민들 일각에선 안전사고가 나더라도 '국가가 책임지겠지' 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안전 문제에 소홀한 편이다. 또 안전을 '비용'으로 인식해 투자하지 않는 후진국형 기업문화를 개선하고, 관 주도가 아닌 민ㆍ관 거버넌스 체제를 통한 재난ㆍ예방 및 안전 문화 확산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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