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국무회의에서 '배신의 정치' 발언을 연상시키는 강력한 국회 비판을 쏟아냈다. 이번 주말부터 10일간 외국 순방으로 자리를 비우는 만큼, 이 기간 안에 정부의 경제법안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의 가닥을 잡으라는 최후 통첩성 발언으로 들린다.
특히 내년 총선을 겨냥한 '국민심판론'을 거론한 건 의미심장하다. '선거개입' 비판을 피할 수 있게 다소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면서도 넣을 뜻은 다 넣었다. 박 대통령이 최근 대구·경북(TK) 지역 물갈이 신호를 보내고 있는 가운데 나온 심판론은 여야를 막론한 '싸잡아' 비판이지만 받을 타격은 여당 쪽이 더 커 보인다.
박 대통령이 국회를 향해 '독설'을 퍼부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날 발언이 더 크게 울리는 것은 야당뿐 아니라 여당내 비박계를 동시에 겨눴다는 점에서다. 국회법 논란 와중에 새누리당 비박계 원내지도부를 '배신의 정치'로 규정하고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사퇴시킨 적이 있는데, 같은 맥락에서 '배신의 정치 제2탄'으로 불릴 만하다.
배신에 대한 1탄의 응징이 비박계 원내지도부 물갈이였다면, 2탄은 내년 총선에서의 국민 심판론인 셈이다. 국정화 역풍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40% 후반대를 유지하고 있어, 이대로라면 내년 총선에서 '박근혜'라는 배경을 둔 후보들의 선전은 기정사실처럼 보인다. 특히 여당의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에서 친박계 후보들로의 물갈이는 내년 이후에도 국정 장악력이 여전히 박 대통령 손에 있게 될 것임을 알려준다.
'국민의 심판'을 지렛대 삼은 박 대통령의 경고에 정치권은 즉각 반응했다. 야당은 박 대통령의 독설에 거부감을 표했고 여당은 일단 의중파악에 들어간 모양새다. 앞으로 김무성 대표 등 여당 지도부가 국정화 논란을 힘차게 헤쳐 나가고 야당을 압박해 경제활성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연출될 것으로 관측된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국회가 진정 민생을 위하고 국민과 직결된 문제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도록 나서 주시고, 앞으로 그렇게 국민을 위해서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국민에 호소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는 법안들은 19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폐기될 가능성이 높다"며 "국회가 이것을 방치해서 자동폐기된다면 국민들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매일 민생을 외치고 국민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정치적 쟁점과 유불리에 따라 모든 민생법안들이 묶여 있는 것은 국민과 민생이 보이지 않는다는 방증이 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와 관련해선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라며 다시 한 번 국정화 강행 의지를 피력했다.
이어 "(현 교과서는)대한민국은 정부수립으로, 북한은 국가수립으로 서술되고, 대한민국에 분단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돼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6.25전쟁의 책임도 남북 모두에게 있는 것처럼 기술되며 전후 북한의 각종 도발은 축소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은 반노동자적으로 묘사하고, 기업의 부정적 면만 묘사해서 반기업 정서를 유발하면서 학생들에게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주게 돼있다"고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국정화를 반대하는 측은 다양성을 이야기하지만 현재 7종 교과서에 가장 문제가 있는 근현대사 집필진 대부분이 전교조를 비롯해서 특정 이념에 경도돼 있다"며 "정부는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가 담긴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약속드린 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역량 있는 집필진 구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들이 집필에 동참할 수 있도록 교육부 등 관계부처가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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