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서울 서초경찰서는 9일 유명 자산관리사 박모(56)씨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원금 보장은 물론, 연간 20~25%의 고수익을 내도록 해주겠다며사람들을 꾀어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다. 박씨와 박씨 회사의 말을 믿고 돈을 맏긴 사람은 모두 130명이며, 이들이 가져다 바친 돈을 합치면 163억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범죄의 유형은 박씨 일당이 벌인 것과 비슷한 종류의 사기 및 공갈이다.
대법원이 최근 발간한 '2015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법원에서 진행된 형사공판사건 중 사기 및 공갈 사건은 모두 5만9000여건으로 전체 사건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16.2%)을 차지했다.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 상해ㆍ폭행(2만7000여건) 건수의 두 배를 넘는 수치다.
사기 및 공갈 범죄의 건수는 그간 꾸준하면서도 급격하게 늘어왔다. 지난 25년간의 범죄통계를 보면, 1990년대 초중반까지 사기 및 공갈 혐의로 기소된 사람은 연간 1만명 안팎에 불과했으나 1998년에 2만명을 돌파했고, 2009년에는 4만명에 육박했다.
'속을 만 하니까 속았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사기 및 공갈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대체 어떻게 속을 수 있지' 라는 의문이 드는 사건이 적지 않다. 상식 선에서 바라보면 믿을 구석이 전혀 없는데도 수많은 사람이 현혹된다는 얘기다.
지난달에도 엉터리 애플리캐이션을 만들어 놓고 이를 통해 조 단위의 돈을 벌 수 있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현혹해 1900여명으로부터 117억여원을 끌어모은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대표 김모(55)씨가 구속기소됐다.
유명 투자자문회사의 마케팅본부장 최모(39)씨 일당은 '해외 선물투자로 매월 2.5%의 수익을 내어주겠다'고 거짓말을 해 2700여명으로부터 무려 1380억여원을 끌어모았다가 지난달 대부분 구속기소됐다.
이처럼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남의 돈을 뜯어내는 범죄가 어떻게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피해자 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심리'에서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사기 범죄의 경우 그 배경에 가해자들의 범죄의도 외에 피해자들의 욕망이나 욕구도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한탕'을 바라는 사행심이 작용한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따라서 사기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손바닥이 마주쳐서 일어나는 범죄"라면서 "나쁜 의도와 허황된 욕망ㆍ욕구가 뒤섞인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투자 관련 사기 사건 수사를 주로 담당하는 한 검사는 "사기 사건 피해의 유형을 살펴보면 피해자들 대다수가 이미 큰 돈을 잃어본 경험이나 당시의 곤란한 사정 탓에 '만회해야겠다'는 강박에 휩싸인 나머지 합리적 판단력을 상실하고 독단적으로 투자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피해자의 심리 특성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갈수록 나빠지는 경제사정 또한 사기범죄를 부추기는 요소다.사기범죄 건수가 급등한 시점은 대부분 IMF 구제금융, 미국발 금융위기 등 국내외적 초대형 경제악재가 터져나온 시점과 맞물린다.
이 교수는 "사기 범죄는 심리의 문제이자 동시에 사회경제적 문제라는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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