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가격 연동제' 글쎄(?)…제도 개선 목소리 커
[아시아경제 이광호 기자]원유(原乳) 수급 불균형으로 유업계의 상황이 악화일로다.
낙농진흥회가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70년 이후 45년 만에 분유 재고량이 최고치를 찍고 있다. 10월 말 기준 2만1000여t을 넘어섰다. 유업계는 올 연말 분유 재고량이 3만여t에 달해 최악의 공급 과잉 사태가 일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분유는 유업체들이 우유와 유가공 제품을 생산 한 뒤 남은 원유를 말려서 가루형태로 보관하는 것을 말한다. 즉 분유의 재고가 급증한다는 것은 원유의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는 것이다.
시장 원리대로라면 공급이 초과했기 때문에 원유의 가격은 낮아져야 한다. 그런데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원유가격 연동제' 때문이다.
원유가격 연동제는 원유의 가격을 시장원리에 따르지 않고 우유를 생산하는 비용에 근거해 가격을 측정한다. 때문에 원유의 생산비용이 늘면 가격이 오르고 비용이 줄면 가격이 내리게 된다. 올해 농림축산식품부는 원유 가격을 ℓ당 940원으로 동결했다.
우리나라가 원유가격 연동제를 채택한 이유는 원유의 생산성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이다. 원유는 변질 우려가 높아 단시간 내에 생산, 가공, 소비가 이뤄져야 하고 저장성이 낮다. 또한 젖소에서 얻어지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유량을 조절하기 어렵고 구제역, 질병 등으로 인해 생산성이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도 생긴다.
따라서 낙농업은 장기간의 생산계획이 필요하고 생산자는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며 생산을 지속할 수 있게 일정한 가격의 보장이 필요했다. 그래서 원유가격 연동제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원유가격 연동제는 통계청이 발표한 우유생산비,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매년 8월1일 가격을 조정한다.
원유가격 연동제가 낙농가의 안정을 보장하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도 많다. 유제품 가격이 인상되고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지는데도 공급하는데 드는 비용이 늘어 가격이 인상되는 경우가 있고, 낙농가 입장에서는 공급이 부족하더라도 생산성을 확대하거나 비용을 줄이려는 노력을 굳이 하지 않는다.
결국 수요는 주는데 공급량과 가격은 높아지는 기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원유의 가격은 계속 올라 소비는 더 위축되고, 재고는 더욱 쌓이게 된다. 현재 재고가 최고치를 기록하는 현상이 바로 이것 때문이다.
따라서 원유가격 연동제를 시장원리를 적용해 보다 현실적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그렇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재고로 유업계는 물론 낙농가까지 한꺼번에 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유업계 1위인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수익성 악화에 월급 일부를 돈 대신 유제품으로 지급했다. 올해 상반기 서울우유는 18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매일유업도 전년 동기 대비 소폭 상승했지만 영업이익은 151억원에서 75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남양유업은 올해 상반기 흑자로 돌아섰지만 마케팅 등 각종 비용을 줄인 결과다.
유업계 관계자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지만 단기간에 개선될 수 없는 만큼 낙농가와 함께 원유 공급량을 줄이는 것이 해법"이라고 말했다.
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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