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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논란마저 압살하는 섬뜩한 눈빛

시계아이콘읽는 시간2분 18초

19일 개봉 '내부자들'서 강렬한 연기로 돌아온 이병헌

[이종길의 영화읽기]논란마저 압살하는 섬뜩한 눈빛 '내부자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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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협녀' 등 최근 작품서 모두 악역 맡아
사생활 논란에도 이미지 포장하지 않고 정면승부
'내부자들'의 정치깡패도 사실적으로 묘사해 호평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연예인에게 대중적 이미지는 생존의 기반이자 존재의 이유다. 배우의 일상과 무대가 다르긴 하지만 대중적 이미지를 따로 떼어내기 어렵다. 축복이자 천형(天刑)이다. 이병헌(45)은 지난해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렸다. 대중의 시선은 따갑다. 많은 사랑을 받아온 스타라서 팬들이 느낀 배신감이 컸다.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보인 무관용(無寬容)도 논란을 부추겼다.


하지만 그는 작품이 잘 되면 금방 잊어버리는 대중의 속성을 이용하지 않았다. 자필로 사과문을 올렸고 여러 차례 입장을 표명해가며 촬영에 힘썼다. 대중은 배우가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검사 등을 연기하면 그 캐릭터와 배우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배우에게는 작품을 통해 이미지를 반전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이병헌은 이 전략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7월 개봉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서 인류를 위협하는 T-1000을 연기했다. 8월에 개봉한 '협녀, 칼의 기억'에서는 권력에 눈이 먼 유백으로 나왔다. 오는 19일 개봉하는 '내부자들'에는 정치깡패 안상구로 등장한다.

이병헌을 지난 3일 만났다. 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할리우드에 진출했다지만 저는 한국배우잖아요. 국내 정서에 맞게 사과를 하며 살아야죠. 몇 마디 사과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피할 수는 없습니다. 실생활에서든 촬영 현장에서든 책임감을 가지고 살겠습니다."


[이종길의 영화읽기]논란마저 압살하는 섬뜩한 눈빛 이병헌


'정면 돌파'는 그의 일관된 자세다. 1991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이병헌은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1995)', '런어웨이(1995)', '그들만의 세상(1996)', 지상만가(1997)' 등에 출연했지만 연달아 흥행에 실패했다. "충무로에 네 번째 기회는 없다"던 시절이었다. 이병헌은 스크린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그런 그가 '내 마음의 풍금(1999)'과 '공동경비구역 JSA(2000)'을 통해 반등했다. 끊임없는 노력 덕이다. 이병헌은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연극영화학과 출신이 아니라 연출가들에게 연기를 배운 것이 전부였다.


"목소리가 목욕탕에서 내는 것처럼 울린다고 많이 지적받았죠. 발음도 그렇고요. 그래서 정확한 전달에 신경을 썼어요. 그렇게 셀 수 없을 만큼 훈련을 거치니까 어느 순간 발음이 명확해졌습니다. 주위에서 칭찬을 하니까 확신이 들더군요." 할리우드 진출할 때도 그의 자세는 변함이 없었다. "아직도 영어로 대화를 하면 막히는 경우가 많아요. 못 알아듣기도 하고요. 하지만 발음만큼은 잘 따라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항상 귀를 열어두고 생활했죠."


이병헌이 생각하는 배우는 '관찰자'다. 그래서 평소에도 대화를 나눌 때 항상 눈을 마주치고 몸짓 등을 유심히 살핀다. 이런 습관은 캐릭터를 분석할 때 큰 도움이 된다. "배우를 하면서 상대가 왜 저런 버릇을 가지고 있는지 등을 추론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계속 생각하면서 내면의 가치관을 읽으려고 노력하죠. 지금은 실감하지 못하지만 할리우드에서 외국인을 접한 경험도 나중에는 연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이 상황을 이렇게 받아들이고 해석할 수 있구나'라며 놀라거든요. 분명히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혀줄 거예요."


[이종길의 영화읽기]논란마저 압살하는 섬뜩한 눈빛 '내부자들' 스틸 컷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은 색다른 연기를 선보인다. 대통령 후보와 재벌 회장을 뒤에서 돕는 정치깡패 안상구는 더 큰 성공을 위해 비자금 파일을 손에 넣었다가 오른 손목이 잘린 채 버려진다. 의수를 찬 그는 자신을 폐인으로 만든 일당에 복수를 꿈꾼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조폭이지만 이병헌은 다양한 색깔을 드러낸다. 둔하면서도 때로는 약삭빠르고, 영악하면서도 가끔은 순수하다. 이병헌이 스스로 이런 덧칠을 계획했다. 촬영을 코앞에 두고 우민호(44) 감독에게 입체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사실 이런 변화 때문에 피곤해지는 쪽은 배우다. 잘못하면 캐릭터가 중심을 잃는다. 영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촬영하지 않기 때문에 앞선 장면과 감정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기도 하다. 이병헌은 그 이음새로 '여유'를 택했다.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이잖아요. 재미는 있지만 관객이 힘들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안상구를 빈틈 많은 사실적인 캐릭터로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촬영이 임박해서 많은 부분을 현장에서 계획해야 했지만 나름 '여우 같은 곰'으로 그려진 것 같아요."


영화에서 달라진 캐릭터의 힘은 상당하다. 사회악들이 빚어내는 이야기와 현실세계 사이의 괴리감을 크게 줄여준다. 우직해 보일 만큼 숨이 가쁜 전개에 리듬감이 더해져 재미도 배가됐다. 그만큼 자신이 있기에 영화 시사를 개봉 17일 전에 강행했으리라. 극찬이 쏟아지고 있지만 이병헌은 담담하다. 오히려 스스로 다잡는다. "연기를 할 때마다 그동안 따라다닌 습관이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하게 돼요. 내 감정이 실리지 않고 타성에 젖은 연기를 할까 두려운 거죠. 스스로에게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지점이 늘 생기는 것 같아요."


[이종길의 영화읽기]논란마저 압살하는 섬뜩한 눈빛 이병헌


자극은 외부로부터도 온다. "최근 촬영한 '미스컨덕트'에서 알 파치노(75)를 보고 감탄했어요. 무엇이든 완벽하게 연기할 것 같은 연세와 경력인데도 연습을 끊임없이 하더라고요. 지켜보면서 정말 황홀했어요." 그에게는 과제가 하나 더 늘었다. 과거에 대한 사과와 철저한 자기관리다. 그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은 듯하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갈 때, 자신을 보기 위해 여덟 시간이나 기다린 팬들을 지나치지 않았다. 매니저에게 팬들을 불러 달라고 하더니 한 명씩 악수를 나누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스타 배우에게서 흔히 보기는 어려운 모습이었다.


*'내부자들'에서 배경으로 등장하는 조국일보의 촬영은 서울 중구 아시아경제신문 사옥과 세트에서 진행됐다. 조국일보는 유명 논설주간인 이강희(백윤식)의 근무처로 대한민국 여론을 교묘하게 조종한다. 안상구와 이강희가 처음 갈등을 빚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민수 프로듀서는 "아시아경제신문의 협조와 배려로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이어 "영화에서 갈구하는 올바른 정론지로 거듭나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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