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세기 후반 최고의 인기를 누린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었다. 그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고난도 기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명성을 얻었다. 바이올린 한 대로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냈고 한 개의 현으로만 연주하기도 했다. 신기에 가까운 연주실력 때문에 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바로 역사상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히는 니콜로 파가니니 얘기다.
27일은 파가니니가 태어난 지 233년이 되는 날이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다섯 살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했으며 열네 살에 첫 연주회를 열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유럽 전역을 돌며 고난이도의 다양한 연주기법을 선보이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인간의 영역이 아닌 것으로 여겨진 연주 실력과 깡마른 체구에 매부리코와 광대뼈가 두드러진 그의 외모는 괴이한 소문을 낳았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연주 실력을 얻었다', '죽은 애인의 창자를 꼬아 바이올린 G현을 만들었다' 등이다. 시인 하이네는 무대 위에 선 파가니니의 발치에 사슬이 감겨 있었고, 그 사슬을 쥔 악마가 앉아 있는 것을 봤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 소문들은 파가니니가 5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1840년까지 계속 그를 따라다녔다. 심지어 사후에도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오명 때문에 그의 시신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현란한 테크닉으로 명연주자 시대를 열었지만 그 테크닉 때문에 편안하게 눈을 감지 못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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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파가니니는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었을까. 샘 킴이 쓴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는 파가니니의 유전질환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저자는 파가니니의 손가락이 유연하고 엄지손가락의 힘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했는데 이는 '엘러스-단로스 증후군'이라는 유전질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콜라겐의 결핍을 가져오는 이 질환으로 엄지를 손등 위로 구부려 새끼손가락과 맞닿을 정도로 손 관절이 유연했고 이 때문에 높은 음과 낮은 음을 더 많이, 더 빠르게 연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오른 손으로 활을 잡고 왼손으로 현을 뜯을 수 있어 마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고 한다. 다만 저자는 파가니니가 이 질환으로 관절통, 시각장애, 호흡곤란 등에 시달렸을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파가니니는 젊은 시절 걸린 매독이 완치되지 않았고 말년에는 후두결핵으로 목소리도 내지 못한 상태로 7개월을 앓다가 사망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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