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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용비어천가

시계아이콘01분 04초 소요

[초동여담]용비어천가 전필수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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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 육룡이 나르샤 일마다 천복이시니….'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모티브가 된 이 시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후 처음으로 발간한 '용비어천가'의 첫 구절이다. 우리나라에 여섯 용(龍)이 나르니 하는 일마다 하늘의 복이라는 이 시에서 여섯 용은 세종의 직계 선조들이다. 용비어천가를 통해 세종은 할아버지 이성계(태조)와 아버지 이방원(태종) 외에도 증조부 이자춘부터 6대조까지를 용으로 비유하며 그들의 초인적인 행적을 찬미했다.

'우리나라를 남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바다에 배가 없으니 하늘이 바다를 얕게 하시고 또 깊게 하셨습니다.'


세종의 5대조인 이행리(익조로 추존)가 여진족을 피해 동해의 적도(赤島)란 섬으로 피난갈 때 하늘이 바닷길을 열어주어 이행리가 무사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이 조선판 모세의 기적은 사실 중국 후한(後漢)을 건국한 광무제 유수의 이야기에서 따왔다. 유수가 적에게 쫓길 때 강이 갑자기 얼어붙었다 녹아 유수가 무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따온 시다.

이성계의 무위(武威)를 노래한 시를 보면 무협지 수준이다. '말 위에 올라 탄 큰 범을 한 손으로 치셨으며, 싸우는 황소를 두 손으로 잡으셨습니다.' '졸애산의 두 노루가 한 살에 꿰뚫리니 하늘이 내리신 이 재주를 그림으로 그려야만 알 것입니까?'


이런 신화적인 선조들의 행적과 하늘의 기적이 있었기에 할아버지 이성계가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건국할 수 있었다고 백성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세종의 선조들은 6대조 이안사(목조)부터 증조부 이자춘(환조)까지 4대에 걸쳐 지금의 함경도 지역에서 몽골의 지방수령격인 '다루가치'를 지냈다. 이들은 고려가 아닌 몽골의 신하였지만 세종은 이런 조상들을 우상화함으로써 새 왕조에 정통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세종은 이 용비어천가를 한글을 만든 집현전 학자들에게 짓게 했다. 지금으로 치면 국립대 최고 교수들에게 조상의 공적을 미화하는 역사를 만들게 한 셈이다. 세종뿐 아니라 과거 동아시아 왕조시대의 대부분 왕들은 건국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별 볼 일 없는 선조들을 미화하는 데 당대 최고의 학자들을 동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물론 이런 용비어천가식의 역사왜곡을 국가의 녹을 먹는 이들에게 짓게 하는 것은 왕이 국가의 모든 권력을 가지고 있던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지금 이곳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이다.






전필수 증권부장 philsu@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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