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연내일지, 내년으로 연기될 지 확신할 수 없다."
15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은 역대 최저인 연 1.5%로 낮아진 상황에서 추가로 금리를 조정하기보다는 국내외 경제상황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미국의 금리인상 시점이 내년으로 넘어갈 것이란 전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즉 연내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이 유효한 상황에서 경기회복 속도를 앞당기기 위해 금리인하란 모험 카드를 꺼내기 보다는 지켜볼 때라는 '신중론'에 힘을 실은 것이다. 3분기 경제 성장률이 전망경로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금리동결 결정을 이끈 요인이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 인상 시점 연기와 함께 원ㆍ달러 환율의 약세 등으로 수출 부진이 더욱 심화된다면 한은도 기준금리 인하로 대응할 수 있다는 시장의 경계심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 총재의 시그널, 예견된 행보= 시장에서 금통위 전부터 10월 기준금리의 동결을 기정사실화 했던 것은 이주열 한은 총재가 공개석상에서 잇따라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발언을 하며 금리 인하 기대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지난 5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미국이 금리를 올리지 않았으니 이참에 한 번 내리자고 하는 것은 생각을 달리한다"며 금리동결을 시사했다. 경기부진을 통화정책으로만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는데다 세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있기 때문에 '지금은 금융안정에 유의할 때'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추가 금리 인하를 압박할 만한 이렇다 할 악재도 없었다. 수출의 지속적인 부진이란 불안감은 상존했지만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사태가 진정되면서 소비자심리지수가 3개월 연속 기준점을 웃돌았다. 관제 행사라는 논란 속에 진행된 국내 첫 블랙프라이데이도 내수 경기를 '일단' 반등 시키는 데 한 몫을 했다. 3분기 성장률이 기존 전망치인 1%대로 올라 설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면서 금통위도 경기 추이를 시간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셈이다.
초저금리가 지속되면서 가계부채와 기업부채의 증가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는 점도 금리 동결의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다. 지난달 은행권의 가계 주택담보대출(모기지론 양도분 제외) 잔액은 458조원으로 한 달새 6조원 증가했다. 전달에도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은 6조원이 늘었다. 지난 7월 말 정부가 내년 시행을 목표로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내놓은 이후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대출심사를 강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가파른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는 수그러들지 않은 셈이다. 기업대출의 증가세도 비슷하다. 9월 중 은행권의 기업대출도 중소기업의 추석자금 수요를 중심으로 5조7000억원 늘었다. 8월은 6조원이 늘었다. 이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 등으로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충격파가 전해지면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란 쌍끌이 악재가 우리 경의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가계부채의 불안감이 큰데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도 크다"며 "금리 추가 인하는 득보다 실이 많은 만큼 한은이 기준금리를 상당 기간 현 수준으로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수출 최대 복병 …추가인하 목소리 키울까= 이번달 금리는 동결했지만 연내 한차례 더 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전망은 여전히 나온다. 내수의 선방에도 우리 경제의 또 다른 한 축인 수출의 개선세가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수출은 지난 9월까지 9개월 연속 전년동기 대비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였다. 특히 지난 8월 수출의 경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7% 급감했고, 수출액 400억달러선도 지키지 못했다. 9월 수출이 전달 보다 다소 회복됐다고 했지만 이 역시 작년 같은 달보다 8.3% 준 435억1000만달러에 그쳤다.
외국계 IB를 중심으로 기준금리 추가 인하 목소리가 여전히 나오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HSBC는 "최근 예상보다 긍정적인 경제지표로 인해 한국에서 즉각적인 금리 인하에 대한 긴박감은 사라지게 됐다"면서 "하지만 향후 통화완화 정책에 대한 필요성까지 배제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HSBC는 "제조업 기반, 그리고 수출 기반의 한국 기업들 중 가장 실적이 우수한 기업들이 속한 섹터는 아직 하락 사이클에 위치해 있으며 상승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는 신호는 약하다"면서 "이같은 환경 아래 충분한 경기 회복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부양책이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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