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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대통령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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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대통령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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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이라는 섬뜩한 단어를 투영하는 어느 부녀의 먹먹한 대화다.


▲아버지: (백수인 딸을 답답하게 쳐다보며) 넌 시집도 못 가고 뭐하냐. ▲딸: (삐딱하게) 결혼은 대통령도 안 했거든. ▲아버지: (어이없다는 듯) 그럼 대통령이 되든가. ▲딸: (좀 더 삐딱하게) 아빠가 대통령이 아니잖아. ▲아버지와 딸: …….

'그래, 니가 무슨 죄냐, 이 사회가 문제지' 아버지는 그만 입을 다문다. 취업에 목을 매는 너는 오죽할까, 안쓰러운 애비는 겨우 한숨을 내뱉는다. 그 한숨이 딸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연말 인사철, 밤잠을 설치는 아버지의 그림자는 어찌 저리 굽었는지. 취업을 걱정하는 딸과 은퇴를 걱정하는 아버지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우울과 피로가 가슴 밑바닥에서 요동친다.


▲딸: 걱정스러우시죠, 우리도 답답해요.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라잖아요. 청년 실업자가 100만명을 돌파했다잖아요. 20ㆍ30대 사망 원인 1위가 취업 등 신변 비관에 따른 자살이래요. 극심한 취업난인데 연애니 결혼이 대수인가요. 애 낳아 키우기 겁나는 삼포세대도 모자라죠.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오포 세대)에 꿈과 희망조차 버리고(칠포 세대) 모든 것을 포기하는 'N포 세대'죠. 그래도 아버지 때는 일자리가 넘쳤잖아요. 길을 닦고 공장을 짓고 아파트를 세우느라 활기가 넘쳤잖아요. 1980년대 9.8%, 1990년대 6.6%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지금은 꿈만 같아요. 우리 세대는 일할 기회마저 박탈당했어요. 비정규직이라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팍팍한 현실이에요. 그러니 너무 다그치지 마세요. 가끔 다독여주세요.

▲아버지: 얘야, 연말 삭풍은 기업에서 먼저 분단다. 임원이라고 다들 부러워하지만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시한부 인생이지. 재계약에 실패하면 그날로 실업자야. '100세 시대'라는데, 앞으로 40~50년을 살아가야 하는데 이놈의 사회는 우리를 '노땅'이라며 자꾸 밀어낸단다. 대통령도 청년 일자리만 걱정하잖냐. 아버지가 직장을 잃고 딸이 직장을 얻는다고 치자.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꼴이야. 사회 전체 일자리를 늘려야 하지 않겠니. 젊은이들과 기성 세대가 함께 일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니. 서민들은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정치인들은 맨날 싸움질이니 딱한 노릇이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를 위로해주자꾸나. 격하게 서로를 다독여주자꾸나.






이정일 금융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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