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천 새정치연합 상임고문 별세…與野 애도물결
[아시아경제 이민찬 기자] 새천년민주당·민주당·통합민주당 대표, 원내총무(현 원내대표), 국민의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 정책위원회 의장, 대변인…
4일 지병으로 별세한 박상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향년 77세)이 1987년 정계에 입문한 이후 명함에 새겼던 직함들이다. 전남 고흥 출신인 고인은 서울대 법대를 나와 13회 사법시험에 합격, 검사 생활을 하다 13대 국회에서 처음 금배지를 달았다. 이후 고향에서 내리 4선을 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당이 쪼개지며 낙선의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18대 국회서 제1야당의 공동대표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고인은 정당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보여준 정치 행보로 정파를 떠나 정치권의 원로로 인정받았다. 특히 대변인 시절에는 상대에게 논리적으로 일침을 가하는 단문 논평으로 유명했다. 매사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하는 열성파로, 원내를 지휘할 당시 지방자치법, 통합선거법, 안기부법개정 등 굵직굵직한 입법 실적이 많아 '법안 제조기'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최근 야권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15대 국회부터 주장한 인물이기도 하다. 2000년 고인이 국민회의 원내총무 시절 소선거구제와 8개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추진,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한나라당이 막판에 입장을 바꿔 미완에 그쳤다. 여야 대립이 지금보다 극심하던 시절 필리버스터(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 행위) 도입을 주장하기도 했다.
고인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을 자르고 의견을 관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로 꼽힌다. 국민의 정부에서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새정치연합 의원은 "고인을 항상 형님이라고 불렀고, 야당 시절 저와 함께 정부와 가장 많이 싸운 분"이라며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 직후 조각 때 입각을 못할 것이란 얘기가 많았지만 박 전 대표의 성실성과 노력, 실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회고했다.
여당 뿐 아니라 야당 생활을 모두 경험한 정치인으로 물리적 충돌보다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는 철저한 의회주의자로도 통했다. 그런 만큼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엔 여야 정치 원로부터 초선 의원까지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조문을 마치고 "우리당 역사에서 큰 획을 그은 분"이라며 "민주정부 출범에 큰 기여를 하셨다"고 추모했다.
정당외교차 미국을 방문하고 이날 새벽 귀국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오후 늦게 빈소를 찾았다. 김 대표는 "고인은 아주 합리적이고 재미도 있어서 정책위의장 하실 때 당시 당에서 법을 굉장히 많이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고인이 담배 때문에 빨리 가셨다"며 아쉬워했다. 고인은 생전에 하루 흡연량이 2갑을 넘는 애연가로 유명했다.
유족으로 부인 김금자(65)씨와 딸 유선(SBS)·민선(제일모직), 아들 태희(SK텔레콤)씨 등 1남2녀를 두고 있다. 사위로는 김욱준(검사), 김용철(의사)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실. 발인은 6일, 장지는 경기도 광주다.
이민찬 기자 lee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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