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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 '기왕이면' 말한마디에 무산된 해외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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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 '기왕이면' 말한마디에 무산된 해외휴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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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대섭 기자] 군대에 있을 때 얘기다. 사단장이 부대를 불시에 방문했다. 부대 정문에서 숙소까지 이어진 큰 길을 오르면서 "주변이 좀 휑하네"라는 말을 툭 내던졌다. 그리고 숙소와 시설을 좀 더 둘러본 후 '1호차'를 타고 사라졌다.


그리고 조금 뒤 한 간부가 집합 명령을 내렸다. "환경정화 차원에서 큰 길 양쪽으로 간격에 맞춰 나무를 심는다. 실시". 주말을 맞아 휴식과 개인정비를 하려던 계획은 1호차의 방문으로 물거품이 됐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대부분 한번쯤은 경험해 봤을 일이다. 통솔자의 말 한 마디가 의도와는 다르게 누군가에게 부담이나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힘 있는 사람'의 말은 위력이 있다. 그래서 무언가를 지시하거나 표현할 때 한 번쯤은 더 생각해보고 말 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만난 금융회사의 한 임원에게 휴가 계획을 물어봤다.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해외로 나갈 계획을 세웠다가 포기했다며 아쉬워했다. 특히 해외에서의 첫 가족여행에 대해 자녀들이 큰 기대를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을 매우 미안해했다. 그는 갑자기 국내 휴가로 계획을 바꾼 터라 여행 숙소도 못잡은 상태였다.

또 다른 금융사의 한 임원도 올해 여름 휴가는 국내에서 보내기로 했다며 지금 분위기에 해외로 나가는 것은 부담감이 크다고 말했다. '내수진작', '국내 휴가 캠페인' 등 회사 안팎의 분위기 때문에 본인 의도와는 다르게 휴가 계획을 세우게 된 셈이다.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 등 시중은행장, 카드ㆍ보험사 대표 등 금융권 수장들의 국내 휴가행이 이어지고 있다. 여름 휴가를 국내에서 보내자는 캠페인을 하는 금융사들도 있다.


금융당국 수장과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직접 나서 국내 휴가를 보내겠다고 한 상황에서 임원들이 해외 여행이라는 '튀는 행동'을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임원들은 CEO의 '일거수일투족'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CEO의 눈 밖에 난 순간 계약자인 그들은 바로 실직자 신세다.


올 여름 휴가를 국내에서 보내자는 취지는 매우 좋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ㆍMERS) 여파로 여러움을 겪고 있는 지역경제를 살리고 내수를 진작하자는 사회적 분위기에 동참하는 의미다.


그러나 일년에 한번 뿐인 여름휴가를 보내면서 휴가지를 놓고 눈치를 봐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7일 국무회에서 좀 더 생각하고 발언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여름 휴가철 우리 관광업계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공공기관과 기업들이 기왕이면 국내에서 휴가를 즐기면서 지역의 특산물도 구입하고 전통시장도 적극 이용해 주기 바란다". 대통령(힘 있는 사람)의 말은 위력이 있다.


'기왕이면 국내에서'라는 말은 발언자의 입장에서는 자율성과 선택권을 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공공기관장과 기업들 CEO에게는 곧 '국내에서 휴가를 보내라'라는 말로 들릴 수 있다. 또 CEO들이 임원들에게 "국내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며 가볍게 던진 말 한 마디도 위력을 발휘한다.


국내 휴가지 보다 해외 휴가지가 좋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통솔자의 말 한 마디가 가족이나 친구, 아니면 혼자 해외 여행을 계획했던 금융사 CEO나 임원들에게 부담이나 피해를 줬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는 의미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다. 올해 상반기 저금리 저성장이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회사와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한 금융사 임직원들이 기억에 남을 최고로 행복한 휴가를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대섭 기자 joas11@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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