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그릭요거트 시늉만 낸 '첨가물 범벅'…'그릭' 아닌 '그릭스타일'로 눈속임
[아시아경제 이광호 기자]#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해 대기업에 입사한 김모(31)씨. 매일 아침 요거트와 샐러드로 하루를 시작하는 김씨는 지난 주말 떨어진 요거트와 샐러드를 채우기 위해 대형마트를 찾았다 깜짝 놀랐다. 미국에서 다논의 '오이코스(Oikos)'라는 브랜드의 그릭요거트를 정기적으로 사먹었는데 한국에서도 풀무원다논에서 판매하는 '다논 그릭'이라는 그릭요거트가 있어 구입했지만 성분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김씨는 "미국의 경우 원유와 유산균만으로 발효시켜 정통 요거트를 판매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각종 첨가물에 안정제까지, 일반 요거트와 별반 차이가 없는 요거트가 그릭요거트로 변질돼 있다"며 "무엇보다 다국적기업이 판매하는 제품이 이 정도 수준이라는 사실에 놀랐다"고 토로했다.
국내 그릭요거트 판매 1위인 풀무원다논이 세계적인 명성만 가져다 붙인 뒤 정작 제품은 제대로 만들지 않고 있어 애꿎은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프랑스 다국적기업인 다논이 미국과 국내에서 그릭요거트를 판매 중인 가운데 미국 제품은 우유와 유산균만으로 만드는 반면 국내 제품은 각종 첨가물이 들어 있다.
미국에서 판매 중인 오이코스 플레인 그릭요거트는 오직 무지방 우유(a non fat milk)와 유산균(contains active yogurt cultures)으로 그릭요거트를 생산한다.
하지만 국내 제품은 우유와 유산균은 물론 농축우유단백분말, 혼합탈지분유를 넣고 있다.
또한 첨가물로 치즈 플레인 시럽(정백당·연성치즈), 변성전분, 레몬농축과즙, 합성착향료(치즈향), 변성전분 혼합제제, 카제인 나트륨 등을 사용한다.
업계 관계자는 "오이코스 그릭요거트는 살균한 우유에 유산균을 넣어 발효해 산도와 질감을 형성한 다음 짜내는 과정을 통해 유청을 제거하며 요거트가 응축되는 방식으로 만들지만 다논 그릭은 일반 농후발효유에 농축우유단백분말과 각종 첨가물을 넣어 생산한다"며 "한국에서는 그릭요거트 제조 방식이 아닌 일반 발효유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풀무원다논은 제품의 상·하단에는 작게 '그릭 스타일'이라고 표시하고 있지만 중앙에는 'GREEK(그릭)'이라고 적어 놓았다.
이를 놓고 업계에서는 한국 소비자를 우습게 보고 행한 조치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국내에는 그릭요거트의 정보가 널리 알려지지 않아 제품의 품질과 기술력을 따지는 소비자가 적을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 아니겠느냐는 반응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국내 소비자 차별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1년 분유업계에서는 미국 유명 분유회사 제품을 두고 뜨거운 논란이 일었다. 당시 설탕이 함유된 분유가 어린 아이들의 치아 건강에 해롭다는 전문가들의 경고에 따라 국내에서는 전혀 설탕을 넣지 않고 있었는데 '씨밀락'으로 유명한 애보트가 한국에 출시한 제품(씨밀락 어드밴스 성장기 분유)에 100g당 8g의 설탕이 들어가 있었다. 반면 애보트가 미국과 캐나다에 국한해 팔고 있는 분유에는 설탕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결국 국내 영·유아의 건강한 성장보다는 아이들의 입맛을 유혹해 판매에만 열중한다는 비난에 직면하면서 애보트가 뭇매를 맞았다.
업계 관계자는 "다국적 기업인 다논이 인지도를 이용해 국내시장에 제품을 출시하고 유명 브랜드로 소비자를 현혹시키고 있다"며 "최근 그릭요거트 인기 상승세는 정체된 우유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소비를 촉진시킬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지만 다논의 행태로 인해 소비자들이 '가짜'를 '진짜'로 오해할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풀무원다논 관계자는 "그릭요거트의 경우 국가별 소비자 특성에 따라 성분은 조금씩 다르다"고 말을 아꼈다.
한편 국내 그릭요거트 시장은 2012년 일동후디스를 시작으로 빙그레, 남양유업, 롯데푸드(파스퇴르) 등에서도 그릭요거트를 출시해 시장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2013년 45억원, 지난해 200억원으로 성장해 올해는 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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