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음색의 여자는 손가락 마디를 꺾는다.
구 악절의 노래여, 철금 소리 휘파람 분다.
외롭거나 긴장할 때 몸은 찬 악기와 흡사해 생상스는 '죽음의 무도'에 실로폰을 사용해 달그락거리는 뼈를 환기시켰다고 한다.
생강 같은 소리, 악기를 감싼 붉은 가죽이 너덜너덜해진다.
완전한 결부는 없다.
긴 터널 빠져나와 햇빛 속으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 오그라든 마음, 지팡이에 입맞춤하는 시간, 당신의 뼈로 나의 잔뼈들을 두드릴 시각이 다가온다.
-김이듬의 '뼈 악기'
우린 살을 만지며 사랑을 나누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몸 속에 있는 뼈를 만지는 것이다. 살 아래 흐르고 있는 뼈들의 맵을 그리워하며 포옹하고 애무한다. 아름다운 여자를 완성하는 것은 살이 아니라 뼈들이 드러나고 가라앉으면서 파도치는 윤곽들이다. 각이 서 있는 콧날과 갸름한 뺨의 맵시, 턱선과 목뼈, 그리고 쇄골과 어깨로 달려나간 뼈들의 화려한 출렁임들, 허리를 타고 내려가는 근골의 서늘한 곡선, 둔부를 이루는 완만한 뼈의 안정감과 발바닥 마디까지 번져나간 에너지의 파문. 그것이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운 여자를 이루는 건 살갗 아래 춤추는 뼈의 안정감과 긴장감이다. 뼈가 음악인 까닭은 거기에 있다. 뼈들이 달그락거려서 음악인 것이 아니라, 뼈가 뼈를 딛고 뼈가 뼈를 물고 뼈가 뼈를 견인해 움직이는 그 운동성과 고요한 정지와 삼엄한 골격의 형태가 음악적이고 예술적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사고로 오른쪽 다리 양쪽 복사뼈가 완전히 부러졌을 때 나는 다리 하나 없는 인간이 아니라 완전한 오체불만족의 존재가 돼 버렸다는 걸 알았다. 그때 다리 하나를 늘 머리보다 높이 올린 인간이 돼 깨달은 것은, 하이힐을 신고 뛰어다니기까지 하는 여체의 놀라운 뼈대에 관한 발견이었다. 뼈라는 것이 대체 얼마나 강인하고 유연하기에 만만찮게 무거운 인체를 들어올린 채 저 킬힐의 삐딱거리는 높이 위에서 저토록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런 운동기관을 설계한 조물주는 어느 공대 출신이란 말인가.
뼈가 아름다운 여자라고 말하면 좀 그로테스크하지만 그보다 더한 칭찬도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랑은 상대의 뼈를 느끼는 것이라고 말하면 너무 직설적인 느낌이 들지만 사랑이 깊어지는 것은 상대의 뼈를 사랑하는 데 있다. 그 뼈들이 내는 음악과 그 뼈들이 내는 신음과 그 뼈들이 텐트를 들어올리듯 들어올려놓은 살들의 출렁임이야 말로 사랑스러움의 핵심감정이다.
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