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코드를 못읽은 그녀
-범 LG가 구자학 아워홈회장 딸 구지은 부사장 보직해임
-기업 돈줄을 거머쥔 그녀
-박찬구 금호석화회장 딸 박주형, 관리담당 상무로
[아시아경제 이광호 기자, 오주연 기자] 범LG가(家)와 범금호가 두 재벌가 딸들의 희비가 재계에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주인공은 범 LG가 구씨 가문 최초의 여성경영자로 주목을 받아온 구지은 아워홈 부사장과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인천 창업주의 손녀로 69년만에 금녀(禁女)의 벽을 깨고 경영진에 합류한 박주형 금호석유화학 상무다. 재벌가 여성의 경영참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들의 경영진 진퇴 배경을 놓고 여성의 경영참여와 후계구도를 짜고 있는 다른 재벌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구 부사장이 지난 2일 보직 해임되면서 아워홈은 지난 6개월간 대표 2명과 부사장 1명 등 최고경영진 3명이 물러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1월 이승우 전 사장이 임기 2년을 남기고 갑자기 교체된에 이어 6월에는 김태준 전 사장이 물러났다. 두 전 사장의 교체 핵심에 있던 구 부사장이 한달만에 보직 해임되고 회장실로 출근하게 됐다.
이 전 사장의 교체가 있던 시기에 구 부사장이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아워홈 후계구도가 구 부사장쪽으로 기울어지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CJ제일제당 출신으로 식품전문가인 김태준 전 사장이 취임 4개월만에 물러났을 때에도 갈등설이 나왔다. 김 전 사장을 노희영 전 CJ브랜드 전략고문이 구 부사장에 추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김 전 사장의 사퇴를 계기로 노 전 고문·김 전 사장과 구지은 부사장 간의 불화설이 돌았다.
아워홈은 구 부사장의 경질배경과 향후 직책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갔다. 구 부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페이스북에 "외부는 인정, 내부는 모략. 변화의 거부는 회사를 망가뜨리고 썩게 만든다"는 글을 남겼다. 또한 "그들의 승리. 평소에 일을 모략질만큼 긴장하고 열심히 했다면 아워홈이 7년은 앞서 있었을 것"이라면서 "또 다시 12년 퇴보. 경쟁사와의 갭은 상상하기도 싫다. 11년만의 안식년 감사하다"고 적었다.
구 부사장이 말한 '12년 퇴보, 11년만의 안식년'은 자신이 아워홈 경영에 나선 2004년을 의미한다. 범LG 가문은 그동안 '장자 승계원칙' '여성배제'원칙을 지켜왔지만 구 부사장이 처음으로 이 원칙을 깼다. 구 부사장은 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3남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1남 3녀 중 막내딸이다. 구자학 회장의 부인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누나인 이숙희 여사다. 서울대 경영대를 나와 미국 보스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이후 삼성인력개발원과 왓슨와이어트 코리아 수석컨설턴트를 거쳐 2004년 구매물류사업부장으로 아워홈에 입사했다. 2004년 5000억 원대였던 아워홈 매출을 지난해 1조3000억원까지 끌어올렸다.
구 부사장이 경질되면서 아워홈 후계구도도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아워홈 지분은 장남 구본성(38.56%)씨와 구미현(19.28%), 구명진(19.60%), 구지은(20.67%) 등 3녀가 지분을 나눠갖고 있다. 4남매 중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오너가족은 구 부사장이 유일하다. 일각에선 '장자승계원칙'에 따라 장남 본성 씨가 후계구도 전면에 부상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반면에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딸인 박주형 관리담당 상무는 금호가의 전통을 새로 쓰고 있다. 박 상무는 2012년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취득해 금호가 여성 최초로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렸으며 현재 총 0.60%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금호그룹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경영참여를 금기시해왔고 형제공동경영합의서에도 이를 적시하고 있었다. 이를 깬 것은 박 회장의 "능력 있으면 딸도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지론도 있지만, 구매 및 자금 운영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대응 차원에서다. 박 상무는 금호석화에서 구매와 자금 부문을 담당할 예정이다. 구매자금 파트에서 직원들의 '자금횡령' 사건이 발생하며 구멍이 생겼기 때문이다.
금호석화는 본사 직원 6명이 원자재 수입과정에서 특정업체에 물량을 몰아주고 거액의 뒷돈을 받은 것으로 보고, 경찰에 조사를 의뢰했다. 현재 관련 내용으로 경찰 수사 중이다.
금호석화에서는 이번 박 상무 인사가 이번 건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금호석화 관계자는 "박 상무의 깔끔한 일처리, 전 직장에서 쌓아온 관리능력, 오너가 자재라는 등 복합적인 요건들로 구매 및 자금운용의 투명성을 강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상무는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에 입사해 지난달까지 근무하며 해외관리팀과 화학본부의 사업개발팀을 돌며 관리분야에 집중해 역량을 쌓아왔다. 대우인터내셔널 재직 시절에도 소탈한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과 원활하게 지내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젊은 여성 직원들과도 사이가 좋아서 '재벌가 딸'이라는 게 전혀 티가 안났다는 후문이다. 업무 스타일도 워낙 꼼꼼하게 일처리하는 성격이라 관리업무에 제격이었다는 평가다.
대우인터내셔널 관계자는 "거쳐간 두 부서에서 모두 관리쪽에 집중해 일해왔다"며 "업무 스타일과 성격 등을 고려할 때 금호석화의 구매자금담당 상무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소화해낼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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