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고형광 기자] 국민연금이 SK㈜와 SK C&C의 합병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하면서 당사자인 SK그룹보다는 오히려 삼성그룹이 긴장하는 분위기다. SK는 우호지분이 충분해 국민연금이 반대해도 큰 무리없이 합병을 추진할 수 있는 반면 삼성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에 이어 단일주주로는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는 국민연금까지 반대할 경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무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을 한 차례 무산시킨 전력도 있어 삼성은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국민연금, SK C&C-SK 합병 반대= 국민연금 주식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는 24일 SK C&C와 SK㈜의 합병 등 임시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심의하고 합병 건에 반대키로 결정했다. 의결권행사전문위는 반대의 이유에 대해 "합병의 취지와 목적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합병비율과 자사주소각시점 등을 고려할 때 SK㈜의 주주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SK측은 자본시장 관련 법률에 따라 기간별 시가를 가중 평균해 합병 비율을 산출한 만큼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SK C&C와 SK㈜는 지난 4월 1대0.73의 비율로 합병을 결정한 바 있다.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SK C&C와 SK㈜의 합병이 무난하게 통과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SK㈜와 SK C&C 모두 총수 일가와 계열사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SK㈜의 경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SK C&C 등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주식 소유 비율이 31.87%이고, SK C&C는 최 회장 등이 49.43%에 이른다.
반면 반대 의견을 내비친 국민연금은 SK㈜ 지분 7.19%, SK C&C 지분 6.06%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합병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안으로 출석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다해도 독자적으로 합병을 무산시킬 수 없다는 의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세계적인 의결권 자문기구인 ISS와 국내 자문기구인 기업지배구조연구원도 (합병)찬성 의견을 낸 바 있다"며 "합병안이 부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 촉각 곤두세우는 삼성= 국민연금의 이 같은 행보에 당사자인 SK그룹 보다는 오히려 삼성그룹이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는 분위기다. 국민연금의 합병 반대 이유가 합병비율 산정이 불합리 하다는 것인 만큼 비슷한 이유로 공격을 받고 있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역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여부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합병비율이 불공정하다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KCC에 자사주를 매각해 의결권을 되살려 현재 우호 지분 19.8%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0.15%를 보유한 1대 주주다. 만약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의 합병을 찬성할 경우 단번에 30% 이상의 찬성표를 얻을 수 있지만 반대를 한다면 엘리엇측에 10%에 달하는 표를 넘겨줄 수도 있다.
때문에 SK C&C와 SK㈜의 합병에서 반대 의사를 밝힌 국민연금이 동일한 사유인 합병비율 불공정을 문제 삼아 삼성물산의 합병 반대에 나설 경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안이 좌초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업계는 국민연금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까지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합병에 반대해 합병 자체를 무산시킬 경우 득보다 실이 많다는 평가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합병에는 찬성표를 던지고 합병비율은 불공정하다고 문제 삼을 경우다. 이렇게 될 경우 삼성물산 입장서는 합병은 성사시킨다 해도 명분은 잃는 셈으로 합병이 성사된다 해도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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