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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자화상, 세상의 아름다움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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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세상 떠난 강성원 작가 유작展

마지막 자화상, 세상의 아름다움을 말하다 삶-나들이, 162x130cm, Acrylic on Canvas,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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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전시회 개최
100호 이상 대작 70점 소개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한 남자가 점퍼를 어깨에 걸치고 사뿐 발걸음을 디디려 한다. 길고 둥근 창문 속에 꽃잎 문양을 지닌 또 다른 창이 열리고 그 안에 오묘한 세계가 담겨 있다. 삶을 평온하고 무겁지 않게, 천천히 걸으며 나들이 하듯 세상을 바라보는 남자의 감성이 느껴진다.


또 다른 그림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사람의 옆모습 형태 안에 두터운 실리콘들이 다채로운 색들의 조합으로 가득 차 있다. 머리 위는 부채꼴 모양으로 '열린 사고'를 지향하는 듯하다. 언어를 뜻하는 입술들, 생각을 의미하는 두뇌의 상징들이 사람 옆에 걸렸다. 작가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지난 4월 고(故) 강성원 작가가 향년 58세로 생을 마감했다. 4년 만에 개인전을 준비하며 '삶-나들이', '자화상'을 그리다가. 지난해 11월 신우요관암 판정을 받은 지 5개월 만이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예정된 6월 전시까지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사도 예측했기 때문이다. 몇 년 간 환기가 잘 안 되는 자택 작업실에서 3000개가 넘는 실리콘을 사용하며 전시를 준비해 오던 작가는 그렇게 마지막 자화상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자화상, 세상의 아름다움을 말하다 고(故) 강성원 작가


마지막 자화상, 세상의 아름다움을 말하다 자화상, 117x80cm, Mixed Media on Canvas, 2014


그가 남긴 작품 2000여점 중 100호 이상 대작(大作) 70점이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걸렸다. 작가가 십수년간 예술의전당 미술아카데미에서 가르쳐온 제자들이 정성을 다해 연 스승의 유작(遺作)전이다. 전시 제목은 '평강하고 성스러운 정원으로 가는 길목'. 그림 속에는 평소 인간의 문명과 자연에 대해 애정 어린 시선으로 통찰력 있는 시각을 드러내온 그의 예술정신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강성원 작가는 젊은 시절 천주교 성상(聖像)만 조각하는 아버지와 생계를 걱정해 파독 간호사의 길을 택한 어머니 사이에서, 화가의 길을 택하면서 독일에서 10년간 유학생활을 했다. 1990년에 귀국해 화단에서 신표현주의의 대표주자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이도 잠시였다. 그의 작품의 세계는 상업주의와는 거리가 있었으며,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강 작가의 전기 작품들은 어둡고 거칠고 강했다. 그러면서 '세상의 정화, 아름다운 세상'이란 메시지를 담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추상에서 오히려 구상적인 요소가 많아졌고, 어두운 색조는 밝아졌다. 그러나 그 메시지는 같았다.


40대 초반부터 그의 강의를 들었다는 장효임(55)씨는 "선생님은 시류에 합류하지 않았다. 그런 점이 제자들에게는 매력으로 비쳤다. 그리고 늘 우리에게 용기를 줬다. '누구나 그림을 그리고 화가가 될 수 있다'고 하셨다"며 "예술가로서 맑은 정신과 미술에 대한 긍지와 사랑이 넘쳤던 분"이라고 했다. 작가의 아내 전희선(58)씨는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그림은 잘 몰랐지만, 남편의 작품을 보고 마음이 푸근해지면서, 신전에 들어간 것처럼 성스러운 느낌도 많이 받았다"며 "남편은 늘 작업에 몰두하면서 살았다. 무척 성실했고 진실했다"고 했다.


세상에 큰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강 작가를 알아보고, 심적으로 지지해 준 이들도 있다. 그 중 한 사람인 이강숙 전 한국예술중합학교 총장(80)은 "그는 천재였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하나같이 어둠을 밝히는 빛"이라며 "먼 훗날 사람들이 눈을 가질 때 그 꽃들의 찬란함에 놀라 눈부셔 할 날을 생각한다. 그 광경을 보지 못하고 가신 강 작가 생각에 가슴이 아린다"고 했다. 전시는 오는 22일까지 열린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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