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스케일·사실적 그래픽 관객 압도…지나친 재탕 장면·성긴 전개 아쉬워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
"'다음 편을 언제 볼 수 있어요?'라는 질문을 여러 번 받으면서 다시 작업을 시작했죠."
스티븐 스필버그(69) 감독은 영화 '쥬라기공원(1993)'을 통해 명실상부 할리우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당연히 공룡에 강한 애착이 있다. 그가 전편과 속편을 연달아 연출한 작품은 '인디아나 존스(1984)'와 '쥬라기공원' 두 작품이다. 후자는 '속편은 전편보다 못하다'는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
6300만달러(약 698억원)를 투자한 '쥬라기공원'이 수익으로 10억2915만3882달러(약 1조1398억원)을 남겼지만 7300만달러(약 808억원)를 들인 '쥬라기공원2(1997)'는 6억1863만8999달러(약 6851억원)를 챙기는데 그쳤다. 조 존스톤(65) 감독에게 메가폰을 넘긴 '쥬라기공원3(2001)'도 9300만달러(약 1030억원)를 쏟아 부었지만 3억6878만809달러(약 4084억원)를 버는데 그쳤다. 비판의식이 결여됐다는 등의 혹평까지 받아 기획으로 물러난 스필버그 감독을 곤란하게 했다. 시나리오가 유출되고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이 세상을 떠나기도 했지만 속편을 다시 제작하는데 주저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14년 만에 '쥬라기월드(2015)'를 내놓은 그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안전은 보장할 수 없음(2012)' 외에 연출작이 전무한 콜린 트레보로우(39) 감독에게 메가폰을 주고 제작 총괄로 한 발짝 또 물러났다. 그런데 이야기 전개 방식은 철저히 스필버그 오마주(작가나 감독의 업적과 재능에 대한 경의를 담아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모방하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공룡에게 살아있는 양과 돼지를 먹이로 주고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와 랩터가 한판 대결을 하는 구성까지 '셀프 오마주'가 곳곳에 널렸다. 그 뼈대마저 과학과 자본주의가 불러오는 비극이라서 캐릭터만 새로 만들어 원작을 재탕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문을 열기도 전에 사라져야 했던 22년 전 공룡 테마파크는 마침내 개장에 성공해 관람객들을 끌어 모은다. 그러나 과도한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시킨 인도미누스 렉스가 우리를 탈출하면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트레보로우 감독은 공룡에게 쫓기는 주인공들을 그리면서 프랑켄슈타인 증후군(엉뚱한 생물이 개발돼 인류가 피해를 입게 될지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심리)은 물론 남녀 간 애정, 가족애 등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나 원작에 비해 설득력과 이음새가 현저히 떨어져 긴박감 있는 전개마저 놓치는 아쉬움을 남긴다.
공룡의 귀환이라는 소재가 주는 독특함과 엄청난 스케일이 주는 압도감이 관객을 영화에 몰입하게 하는 힘은 있다. 22년 전과 비교가 되지 않는 기술력으로 비주얼을 구현했고, 육ㆍ해ㆍ공을 망라하는 다양한 공룡들을 전면에 내세워 전편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현재 이론으로 정립됐거나 실현 가능한 과학적 콘셉트를 차용해 사실감까지 더 했다.
원작부터 제작에 참여해온 미국의 고생물학자 잭 호너(69)는 "무한한 상상력이 주는 스릴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과학적 타당성을 가져야 했다"고 했다. 이번에 등장하는 모사사우루스는 길이가 22m나 돼 2~3m의 백상아리가 에피타이저로 보인다. 다양한 능력을 갖춘 인도미누스 렉스도 14.7m에 달한다. 하지만 호너는 "공룡들은 살아가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계속해서 성장하기 때문에 더 큰 공룡을 찾아 나서야 했다"고 했다. 트레보로우 감독은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며 "실제 과학과 고생물학을 활용한 덕에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고심이 담긴 콘셉트는 수준급 컴퓨터그래픽 기술과 어우러져 보다 생동감 넘치는 공룡으로 탄생했다. 예고편에 야외 낮 장면을 과감하게 삽입할 정도다. 보통 이런 영상은 실내 세트에서 촬영한 실사를 컴퓨터그래픽과 합성시키는데 조명 값의 차이가 커 어색해 보이기 쉽다. '미스터고(2013)'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 등의 컴퓨터그래픽을 담당한 덱스터스튜디오의 서형찬(38) 프로듀서는 "실외에서 실사 작업을 해도 조명 값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상당한 돈과 시간을 요구한다"면서 "배경이 넓어질수록 그 고충은 더 심해진다"고 했다. '쥬라기월드'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건 막대한 예산을 들여 마케트(축소 모형)를 제작했기 때문이다.
ILM의 애니매이션 수퍼바이저 글렌 매킨토시는 "색상과 비닐의 질감, 눈의 디테일 등 세세한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적합한 조명을 구해 컴퓨터에서 만들어진 캐릭터를 실제화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사실 최근 업계에서는 애니마트로닉스(영화 등을 위해 사람이나 동물을 닮은 로봇을 만들고 조작하는 과정)를 선호하지 않는다. 괴물이나 생명체를 만드는 작업에 있어 컴퓨터로 작업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레보로우 감독은 "직접 만지고 숨 쉬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무언가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여기에는 2008년 타계한 스탠 윈스턴에 대한 경의도 담겨 있다. 윈스턴은 원작에서 공룡에게 처음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어 할리우드 특수효과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를 보고 자란 레거시이펙트의 제자들은 거장의 뒤를 따라가고 싶었을지 모른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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