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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고 도입의 조건…"美 재정건전화 방안이지만 한국서는 복지제약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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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페이고(pay-go) 원칙 도입이 다시금 논란이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는 페이고 제도를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제도적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도입이 쉽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페이고 원칙은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할 때 국가 재정의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의무지출이 소요되는 새로운 입법을 할 때마다 세입 증가 또는 다른 법정 지출 감소 방안을 동시에 입법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이달 13일 박 대통령은 2015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이제는 우리 실정에 맞는 재정준칙 도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페이고’ 원칙"이라며 "입법을 통한 무분별한 지출 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재정을 수반하는 법률 입안시 재정조달 방법도 함께 제출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가정에서도 어머니들이 새로 돈 쓸 곳이 생기면 빚을 내기보다 불필요한 씀씀이부터 줄여나가듯이 나라 살림살이도 이런 원칙에 따라 운용하자는 것이 ‘페이고’의 근본 취지"라며 "돈 버는 사람 따로 있고, 돈 쓰는 사람 따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페이고 원칙을 도입하기 위해 이만우 새누리당 의원과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이 각각 관련 입법에 나섰다. 이만우 의원은 국회에서 의무지출 또는 재정수입감소를 수반하는 법률안을 발의할 경우 해당 의무지출의 증가 또는 재정수입 감소 만큼 다른 의무지출을 줄이거나 재정수입을 증가시킬 수 있는 법안을 함께 발의하도록 의무화하는 안을 냈다. 이노근 의원은 예산이 수반되는 법안을 발의할 경우 재원조달 방안을 마련하는 것과 예결위에서 예산안 총액을 심사한 뒤, 각각 상임위에서 총액 한도 내에서 예산을 심사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같은 안들에 대해 야당은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회의 입법권을 제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수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현 단계에서 재정을 수반하는 모든 의원입법에 대해 지출법안을 의무화하는 것은 국회 입법권과 재정권한을 과도하게 통제할 것"이라며 "박 대통령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페이고' 제도가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왜곡해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현정부 들어 날로 악화되는 재정상황을 감안하면 재정문제에 대한 새로운 원칙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타당하지만 미국에서 도입한 페이고 원칙을 한국에서 적용하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사자성어 귤화위지(橘化爲枳)처럼 귤이 변해 탱자가 될 수 있는 것처럼 같은 제도도 환경에 따라 그 모양과 성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만우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대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검토의견을 살펴보면 미국의 경우 법안제출은 자유롭게 하되 예산안 의결시 총량차원에서 페이고 원칙을 적용한 반면 우리의 경우에는 개정안 마다 페이고 원칙을 적용하도록 해 법안제출에 있어서 미국보다 더 큰 제약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의무지출은 대부분 법률이 아니라 시행령을 통해 결정되는데 법률단계에서 페이고 원칙을 적용하는 것도 한계라는 분석도 많다. 법률을 어떻게 만들든 시행령에 따라 비용지출 금액이 달라지는데 우리나라에서 논의되는 페이고 원칙 도입 법안들은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의 경우에는 법률은 비용 지출의 근거에 불과할 뿐 실제는 정부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지출규모가 달라지는 상황이라 지출규모를 국회가 파악할 수 없다. 법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지출의 규모를 결정할 수 없는데도 비용 지출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페이고 제도를 꺼내든 것은 본질적으로 복지를 억제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실적으로 미국과 달리 우리 국회는 재원 마련 방안을 마련하기 어려운 구조인데도 복지 등에 쓰이는 의무비용에 대해 재원마련 방안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복지를 제약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다. 과거 페이고제도 도입관련 토론회에서 박민수 새정치연합 의원은 "페이고 제도를 도입하면 복지 지출이 자원분배의 적정성에서 밀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는 "국회에서 재정총량과 부분별 자원 배분 합의 등을 정할 수 있는 예산 심의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가 전체적인 예산 규모를 획정하고 무엇에 예산을 쓰고 무엇을 덜 쓸지를 결정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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