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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진화ㆍ인공지능을 ‘직관펌프’로 사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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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통섭 학자 대니얼 대닛의 ‘철학으로 과학하기’…기존 저술 한 권으로 망라

[아시아경제 백우진 기자] #1.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지지 않음을 갈릴레이는 다음과 같이 사고실험으로 증명했다.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면 무거운 돌 a가 가벼운 돌 b보다 빨리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b를 a에 묶으면 b가 a를 붙들어 낙하 속도가 느려져야 한다. 하지만 b와 묶인 a는 a만 있을 때보다 더 무거워졌기 때문에 a보다 더 빨리 떨어져야 한다. 따라서 b와 묶인 a는 a 자체보다 더 빨리 떨어져야 하는 동시에 더 천천히 떨어져야 한다. 이는 모순이다. 따라서 무거운 물체는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지지 않는다.


철학자, 진화ㆍ인공지능을 ‘직관펌프’로 사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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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보다 엄밀함은 떨어지지만 효과가 없지 않은 사고실험도 있다. 직관을 불러일으켜 사실이나 메시지를 전하는 가상의 이야기다. ‘괴짜 교도소장’이 그런 사고실험의 간단한 예다. 그는 수감자들이 모두 깊이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감방 자물쇠를 모조리 따고 문을 밤새도록 열어둔다. 수감자들은 밤새 자유로워지는 것일까? 그들에게는 나갈 기회가 있을까? 이 책을 쓴 대니얼 대닛은 이 이야기는 ‘진짜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이에 대해 무언가 행동을 취해야겠다고 제때 판단할 수 있으려면 시의적절하게 정보를 얻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직관을 펌프질한다고 설명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77가지 ‘직관펌프’는 주제가 폭넓고 난이도도 아주 쉬운 것부터 매우 복잡한 것까지 고루 분포돼 있다.


이 가운데 인지과학과 관련된 직관펌프 ‘클리블랜드 사는 형’을 들어보자. 대닛은 “바야흐로 신경암호학의 황금기가 찾아와, ‘인지미세신경외과 의사’가 환자의 뇌를 살짝 손보아 믿음을 ‘주입’하고 신경세포에 적절한 명제를 써넣을 수 있게 됐다’’는 사고실험을 제시한다. 그는 이어 “우리가 톰의 뇌에 ‘나는 클리블랜드에 사는 형이 있다’는 틀린 믿음을 주입하려 한다고 가정해보자”고 제안하고 다음 상황을 상상한다.

톰이 술집에 앉아 있는데 친구가 묻는다. “너, 형제나 자매 있어” 톰이 대답한다. “응, 클리블랜드에 형이 살아. “이름이 뭔데?” 대닛은 톰이 이렇게 대답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름? 누구 이름? 이거야 원, 내가 무슨 얘길 하고 있었던 거지? 나 형 없어. 문득 클리블랜드에 형이 산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대닛은 이 직관펌프로부터 ‘누구도 (관련된 사실이 딸리지 않은 별도의) 한 가지 믿음만을 가질 수는 없다’는 이론을 설명한다.


◆ 르네상스형 철학자= 저자는 하버드대학 철학과를 거쳐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국 터프츠대학 철학 교수로 인지연구센터의 공동 소장직을 맡고 있다.


대닛은 여느 철학자와 달리 철학을 전공했지만 언어학과 심리학, 인공지능, 신경과학, 컴퓨터학을 두루 연구했다.


그가 쓴 책 가운데 ‘자유는 진화한다’(Freedom Evolves)와 ‘마음의 진화’(Kinds of Minds)가 국내에 번역됐다. 그는 이밖에 ‘다윈의 위험한 생각’(Darwin's Dangerous Idea) ‘브레인스톰’(Brainstorms) 등을 저술했다.


미국에서 2013년에 나온 이 책은 올해 73세인 저자가 그동안 섭렵해온 분야를 망라해 써낸 것이다. 그래서 77가지 직관펌프는 ‘일반적 생각 도구’ ‘의미 또는 내용을 위한 생각도구’ ‘의미를 위한 생각도구’ ‘의식을 위한 생각도구’ ‘자유의지를 위한 생각도구’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등 철학과 인지과학에 해당하는 범주와 ‘컴퓨터에 대한 막간 설명’ ‘진화를 위한 생각도구’ 등 과학 범주로 나뉜다.


이 책을 한 권으로 통독하는 대신 각 부(部)를 별도의 단행본으로 여기고 들춰봐도 좋다. 또는 책 갈피가 넘어가는 대로 펼쳐지는 직관펌프를 읽어도 무방하다.


◆ 과학을 철학적으로 이해하기= 저자는 일반인에게 생소한 철학자 게일런 스트로슨의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궁극적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주장을 직관펌프를 들어 논박한다. 대닛은 “사람들이 아기에서 어른으로 자라면서 점차 도덕적 책임이 커지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는 굳이 직관펌프를 동원하지 않아도 널리 받아들여지는 평범한 상식이다. 또 대닛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이 커지는 변수로 ‘나이’를 들었지만 연령과 무관할 수 있는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도 그런 변수다. 형법은 심신장애로 인해 그런 능력이 없는 사람의 범죄는 처벌하지 않고 그런 능력이 약한 사람의 범죄는 형을 감경한다.


철학자, 진화ㆍ인공지능을 ‘직관펌프’로 사고하다 대니얼 대닛

한편 과학과 관련한 저자의 직관펌프는 주로 이미 밝혀진 이론을 ‘철학적’으로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앞서 소개한 ‘클리블랜드 사는 형’을 정신의학자는 코르사코프 증후군 환자의 사례로 반박할 수 있다. 이 증후군은 장기적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뇌손상으로 심각한 기억 장애를 겪으면서도 과거의 일을 꾸며내면서 사실이라고 믿는다.


코르사코프 증후군 환자는 일말의 진실도 없는 ‘기억된’ 과거를 정교한 이야기로 지어낸다. 이 환자가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의 뇌에 따로 고립된 명제가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몇 가지 직관펌프는 이해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영국 주간매체 이코노미스트는 서평에서 “이 책은 읽기 쉽지 않다”며 “일부 페이지는 한 번 이상 골똘히 생각하며 읽어야 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저자가 비판한 존 서얼 버클리대학 철학과 교수는 저자를 가리켜 ‘어려운 문제를 쉬운 것처럼 호도한다’고 비판한다. 진리는 대닛에게도 서얼에게도 있지 않다고 기자는 생각한다. 중요한 요소는 그 경계에 있다고 본다.


대닛의 직관펌프는 진화론과 인공지능 등 과학 분야에서 여러 쟁점을 철학적으로 다룬다. 과학 자체보다 과학을 둘러싼 철학적인 물음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권한다.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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