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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의 정치학]성완종 권력과 흥망성쇠한 '전화'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17초

-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인생의 권력 흥망성쇠
-전화와 함께 흘러…전화와 권력 사이 쓸쓸한 숨바꼭질
-전화에 '사람의 가치'가 더해지면 그순간 힘이 되고 권력의 실체가


[아시아경제 전슬기 기자]전화는 권력이다. 내 번호가 그 사람의 핸드폰에 뜨는 순간 전화를 받게 하는 것도, 그 전화를 피하게 하는 것도 권력이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인생에서 권력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전화'와 함께 했다. 성 전 회장은 초등학교 중퇴 후 단돈 2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해, 경남기업을 거머쥐며 매출 2조원의 그룹 총수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학연도 지연도 없던 그는 인맥관리에 철저하게 집착했다.


성 전 회장은 아침ㆍ점심ㆍ저녁식사를 절대 혼자 하는 법이 없었으며, 거미줄 인맥 사이에서 정보 교환하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 인맥은 비주류인 그의 인생을 권력의 한복판으로 옮겨줬다. 그가 만든 친목단체 '충청포럼'은 전국 10개 지부, 100여개 지회 아래 3500여 명의 회원을 둔 거대조직이 됐다. 성 전 회장의 휴대폰은 3개로 추정된다. 3개의 핸드폰에는 그의 번호가 뜨면 언제든 받을 수 있는 '성완종의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의 전화번호는 살아있는 권력과의 통로였다.

권력은 '받지 말아야할 전화'가 된 순간 꼬꾸라졌다. 성 전 회장은 자원외교 비리로 수사망이 좁혀오자 자신의 사람들 핸드폰에 '구명 번호'를 띄웠다. 망자(亡者)와의 진실게임을 벌이게 된 이완구 국무총리에게도 수차례 연락을 취했다. 숨지기 전까지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평소에 호형호제라고 생각했던 현 정권의 핵심 친박 실세들에게도 통신선을 연결했다.


하지만 그의 권력이 한순간에 추락한 것 처럼 그의 전화는 갑자기 피해야할 대상이 됐다. 그나마 전화를 받아 준 서청원ㆍ최경환ㆍ윤상현ㆍ김태흠 의원 등이 '의리를 지킨 사람들'이 됐다. 성 전 회장은 결국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충청포럼 멤버인 한 언론사 부장에게 오전 6시 마지막 전화를 띄우고 숨을 거뒀다.


현 정권의 또 다른 폭풍이었던 정윤회 문건 사태 때도 한 통화의 전화가 등장한다. 조응천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은 언론사 인터뷰에서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정윤회씨가 최근에도 만나는 사이라는 것을 언급했다. 그 과정에서 조 전 비서관이 받은 연락에는 핵심 권력의 실체가 그대로 드러났다. 조 전 비서관은 청와대 공용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는데 모르는 번호라서 받지 않았더니 '정윤회입니다. 통화를 좀 하고 싶습니다'는 문자가 왔다고 전했다. 이어 이 비서관은 또한 조 전 비서관에 한번 더 전화를 걸어 이어 '정윤회 씨의 전화를 받으시죠'라고 전하기도 했다. 조 전 비서관의 핸드폰을 받게 한 권력의 힘이다.


전화의 힘은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만든다. 올해 초 실형을 선고 받은 조모 씨는 "청와대 총무비서관이다"며 박영식 대우건설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취업을 부탁했다. '청와대 비서관'이라는 말에 덜컥 놀란 대우건설은 사실확인도 하지 않은 채 조 씨를 채용했고, 전과 2범인 조씨는 1년 동안 매달 500만~ 600만원의 급여를 챙겼다.


전화에 '사람의 가치'가 더해지면 그 순간 전화는 권력의 실체로 변신한다. 이명숙 심리학 전문가는 "성 전 회장의 마지막 전화는 권력 형성부터 권력의 배신까지를 보여준다"며 "현대 사회의 전화는 그 자체가 그 사람 존재를 대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슬기 기자 sgj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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