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한 성격, '비밀장부' 작성 주장도 나와…檢 수사속도보다 빠른 혐의 폭로도 변수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꼼꼼한 성격이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수사에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성 전 회장은 정·관계 인사와의 점심, 저녁 약속 시간과 장소 등을 꼼꼼히 기록한 ‘비망록(성완종 다이어리)’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당초 성 전 회장 시신 수습 과정에서 발견한 ‘금품 메모’ 쪽지만으로는 수사 착수가 쉽지 않다면서 여론의 동향을 살피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이들을 포함해 정치권 주요 인사들과 언제 어디에서 만났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면 검찰은 수사의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추기는 어렵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팀은 레토릭으로 좌고우면 하지않겠다고 말씀드리지 않겠다. 검사로서 부끄럽지 않게 원칙대로 하겠다"고 강조했다.
성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과거 정치권 인사들에게 금품을 전달한 행적을 점검하고 복기한 ‘비밀 장부’가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또 다른 형태의 ‘성완종 다이어리’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성 전 회장은 과거에 금품을 건넨 인물이나 금품 전달에 동원된 이들을 일일이 만나 실제로 돈을 전달했는지 등을 묻고 이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1억원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윤모씨도 이 과정에서 성 전 회장과 만나 얘기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홍 지사는 자신을 둘러싼 의혹제기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며 금품수수 의혹을 일축했다. 그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언론에 거론되는 윤모씨는 제 경선을 도와준 고마운 분이지만 제 측근이 아니고 성완종씨 측근”이라며 “성완종씨와 윤모씨의 자금 관계는 저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논란의 당사자들은 모두 부인하고 있지만 의혹은 점점 커지고 있다.
성 전 회장은 죽음을 선택하기 전 검찰 수사를 둘러싼 억울함을 호소하며 여권 핵심 인사들에게 구명 노력을 이어갔다. 자신에게 신세를 졌던 이들이 차갑게 대응하는 것을 보며 크게 실망했고, 경향신문 인터뷰를 통해 정계 금품 제공 사실을 폭로한 것으로 분석된다.
금품 전달 시점과 전달 액수 등의 의혹이 구체적으로 제기된 이완구 국무총리와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 이 총리와 홍 지사 모두 “전혀 사실 무근”이라면서 금품 수수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 안팎의 기류는 심상치 않다.
당초 성 전 회장이 이미 숨졌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가 쉽지 않고 수사를 하더라도 기소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의미심장한 자료와 진술이 연이어 나올 경우 검찰의 의도와 무관하게 사건 전개의 속도는 빨라질 수 있다.
경향신문은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전 50분간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를 갖고 있다. 성 전 회장은 작심하고 인터뷰를 진행했고, "꼭 기사로 써달고"고 당부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은 조금씩 인터뷰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이완구 총리에게 3000만원이 건네졌다는 의혹을 전한 14일자 보도는 그 중 일부일 뿐이다.
검찰 수사속도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혐의 폭로가 더 빠르다는 점은 변수가 될 전망이다. 검찰이 정보를 움켜쥐고 필요에 따라 공개 시점을 조정하는 게 아니라 검찰 밖에서 구체적인 내용들이 먼저 공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성 전 회장의 비밀장부와 다이어리 등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한 뒤 수사의 방향을 정할 방침이다. 사건의 의문을 풀어줄 인사들에 대한 소환 통보도 이어갈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주요인사에 대한 소환통보는) 수사 상황에 따라서 그때그때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어떤 때라도 검찰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겠다”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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