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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동안 가려져있던 '천일고속' 차명주식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25초

박남수 명예회장 주식 98만주, 손자에게 증여하며 알려져

-감독당국 "명백한 허위기재"…뚜렷한 제재수단은 없어


[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 김민영 기자]고속버스운송회사 천일고속의 창업주 박남수 명예회장이 1977년 상장 후 38년 동안 전체 주식의 68%에 달하는 개인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1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날 천일고속은 최대주주 변경공시를 통해 박도현 대표이사와 박주현 부사장의 지분율이 각각 43.15%, 36.16%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박 대표이사의 지분율은 약 4개월 만에 6.02%에서 7배 이상, 박 부사장의 지분율은 같은 기간 4.41%에서 8배 이상 폭증했다. 박 대표이사와 박 부사장은 박재명 전 대표이사의 아들이자 박 명예회장의 손자다.


두 사람의 지분이 급증한 이유는 창업주 박 명예회장으로부터 주식을 한꺼번에 증여받았기 때문. 박 명예회장이 손자들에게 증여한 주식은 총 98만2944주로 총 발행주식의 68.77%, 전일 종가기준으로 67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사업보고서 등 공식 서류상으로 지분이 없던 박 명예회장이 전체 발행주식의 70%에 가까운 지분을 증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분을 명의신탁을 통해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박재명 전 대표이사의 지분을 포함해 최대주주 일가의 지분도 85.87%로 종전 26.94%에서 3배 이상 높아졌다.


박 대표이사 형제의 지분이 늘어나는 동안 특수관계인으로 이름을 올렸던 친족들은 보유 지분을 모두 처분했다. 아버지 박 전 대표이사와 막내아들 박정현씨의 지분을 제외한 14만2313주가 약 4개월 만에 증발한 셈이다. 지난해 사업보고서 제출 이후 지난 4개월 동안 별도의 지분변동 공시가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보유한 주식도 명의신탁된 물량으로 두 형제에게 넘겼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박 명예회장은 98만여주의 주식을 38년 동안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었고 사업보고서 등 정기보고서 주석에 이와 관련한 내용을 적시하지 않다가 두 손자에게 증여를 통해 이를 고백한 셈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명의신탁한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자는 사업보고서의 주석과 별도의 공시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공지하게 돼 있다.


박 명예회장은 상장법인이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하는 '주식지분율 5%룰(rule)'도 위반했다. 1991년에 도입된 5%룰은 특정인이 상장법인의 발행주식을 5% 이상 새롭게 취득하는 경우 공시하도록 한 제도다. 지분 5% 이상의 보유자가 1% 이상 지분을 매매할 경우에도 5일 이내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명의신탁을 이용했다지만 사실상 금융실명제를 어겼고, 자본시장법도 위반했지만 이를 뒤늦게 안 감독 당국은 눈에 띄는 제재 수단이 딱히 없는 실정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과거에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던 주식과 관련해 배당이 있었다면 세법 등 관련법에 의해 문제가 될 소지가 있고, 자본시장법상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는 지분도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며 "의무 공시사항인 5%룰 등을 위반한 만큼 공소시효 등을 따져 조치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과거 회사 설립 당시 설립기준이 발기인이 3~7명 이상 돼야 한다는 요건이 있어 이 기준에 맞추려다 보니 의도치 않게 명의신탁을 한 이유가 있었다"면서 "그럼에도 자본시장법, 금융실명제 도입 이후 명의신탁한 주식 보유 사항을 공시하지 않은 건 명백한 허위기재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 역시 제재 수단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특수관계인 포함 최대주주 비율 90% 이상인 경우 관리종목 지정 사유에 해당돼 상장실질심사를 통해 상장폐지 여부를 가릴 수 있는데 천일고속의 경우 최대주주지분율이 86%이기 때문이다. 상장실질심사 대상이라고 해도 도입(2009년)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할 수 없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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